미륵사지터와 발굴된 돌덩이들.
미륵사지터와 발굴된 돌덩이들.
세계유산을 간직한 도시에 닿는다는 것은 설렘이다. 뜨거운 햇살 속 광활한 터를 홀로 걷더라도 그곳에 세계유산의 온기가 서렸음에 가슴이 충만하다. 익산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을 품은 도시다. 익산 관광지를 안내하는 팸플릿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라는 수식어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교통의 요지’ ‘보석의 도시’ 등 그동안 익산을 상징하던 수식어는 기쁜 마음으로 ‘세계유산 도시’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에 그 자리를 내줘도 될 듯하다.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인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은 세계유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백제 문화 융성의 흔적 미륵사지

미륵사지 동탑.
미륵사지 동탑.
익산 공주 부여를 아우르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주변국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적 발전이 절정에 이른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건축 기술, 예술, 종교 등 백제 후기 문화적 독창성과 역사적 가치 등을 짚어보는 게 익산 세계유산 여행에서 곱씹어야 할 내용이다.

유년 시절을 익산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이곳 유적이 세계적인 조명을 받는 상황이 익숙지 않다. 어릴 적 소풍 장소나 놀이터로 기억하는 언덕과 탑이 번듯한 모습으로 변신 중이다.

금마면 익산 미륵사지(사적 150호) 입구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알리는 큼지막한 인증서 석비가 있다.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 사찰 터로 알려진 곳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은 무왕 때 건립된 국내 최대 석탑이다. 미륵사지는 ‘서동요’, 선화공주와의 순애보로 알려진 무왕의 깊은 불심, 백제 문화의 융성을 담아낸 곳이다. 규모나 사연에서 백제의 전성기를 살펴보기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미륵사지는 3금당 3탑의 가람 배치가 유일하고 독특하다. 절터에는 영화로웠을 당시의 흔적이 천년 세월의 돌덩이들과 함께 온기를 더한다. 서탑인 미륵사지 석탑은 해체 후 복원 작업 중이다. 전체 9층으로 추정되는 석탑은 6층까지 남아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덕지덕지 보수된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해체 작업을 할 때 석탑 중앙에서 금제 사리장엄구와 사리봉안기가 발견됐다. 사리봉안기에는 백제 왕후가 미륵사를 창건하고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서탑의 복원 과정은 참관할 수 있다.

◆불교 뜻 되새기는 세계유산

미륵사지에는 1990년대 초반 복원된 동탑과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236호) 등이 있다. 동탑에는 사찰 터에 남은 옛 돌의 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 당간지주 역시 미륵사지의 독특한 가람 배치를 대변한다.

해체 전 미륵사지석탑의 모형.
해체 전 미륵사지석탑의 모형.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 가면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유물 1만9000여점을 통해 미륵사의 역사와 문화를 그려볼 수 있다. 복원 작업 전의 미륵사지 석탑이나 발굴 작업을 통해 번성한 시절 미륵사의 모습을 추정한 모형도 눈길을 끈다. 광활한 절터를 거닐며 ‘미륵이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한다’는 당시 불교의 뜻을 되새기는 것도 세계유산을 알현하는 색다른 방법이다.

왕궁면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408호)은 백제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지역 이름도 예전부터 왕궁리다. 왕궁리 유적은 무왕 때 부여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왕궁을 지었고, 백제가 멸망한 뒤 사찰을 건립한 이력이 있다. 동서 250m, 남북 500m 왕궁 터에서 유물 1만여점이 나왔으며, 현재도 발굴 조사 중이다. 왕궁 터는 반듯한 직사각형이다.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금을 가공하던 공방 터, 왕궁의 담장 등이 왕궁 터였음을 입증한다.

왕궁리유적전시관에 있는 유물을 보면 더 흥미롭다. 삼국시대 최초이자 최대로 추정되는 화장실 유적과 용변을 보던 변기형 토기, 수도였음을 알리는 ‘수부(首府)’라고 새겨진 기와, 금과 유리 세공품 등이 이채롭다. 왕궁리 유적 한가운데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289호)이 외롭게 터를 지킨다.

◆성당교도소세트장은 흥미있는 볼거리

세계유산에 심취한 뒤 만나는 익산의 관광지는 백제 문화의 흔적이 깃들어 더 친근감이 든다. 왕궁리 유적 인근에 자리한 보석박물관은 보석과 원석 11만여점이 전시된 국내 유일한 보석 박물관이다. 백제 유물을 보석으로 재현한 작품이 아름답고, 옛 백제 장인의 DNA가 현재의 세공 기술에 전이된 듯해 더 애정이 느껴진다. 금마저수지를 끼고 다양한 조각 작품이 있는 서동공원에는 선사시대부터 마한까지 유물을 전시한 마한관이 들어섰다.

금강으로 연결되는 익산의 서북쪽은 한적한 시골 모습이다. 1929년 ㄱ(기역)자형으로 건립된 성당면 두동교회는 남녀유별 풍습과 서까래, 목조 바닥 등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인근 성당교도소세트장은 폐교를 활용한 전국에서 유일한 교도소 세트로 영화 ‘홀리데이’ ‘7번방의 선물’ ‘내부자들’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함라마을에는 익산 부자들이 살던 고택과 옛 담장이 남아 정취를 더한다. 함열읍 고스락에 가면 3500여개 항아리에서 장이 익어가는 고즈넉한 가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동물 농장 체험이 가능한 액션하우스, 금강 변에 자리한 성당포구마을도 가족과 함께 둘러볼 만한 장소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메모

왕궁면에 있는 왕궁온천(063-291-5000)은 굿스테이로 지정된 곳으로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뚜부카페(063-833-1088)는 두부전골이 맛있다. 식감도 좋고 칼칼해서 찾는 이가 많다. 순두부백반은 미륵산순두부(063-836-8919)가 좋고 함라면 백제로에 있는 함라산황토가든은 오리주물럭을 잘한다. 주변에 입점리고분전시관, 익산 쌍릉, 숭림사, 나바위성당도 같이 둘러볼 만하다.

국내 세계문화유산 마을 4選

◆거석문화의 진수, 화순고인돌유적

전남 화순 괴바위 고인돌의 굄돌.
전남 화순 괴바위 고인돌의 굄돌.
전남 화순은 강화, 고창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발견돼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산기슭에 분포해서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한길로 잇는 보검재 5㎞ 구간에 있어 탐방 동선도 편리하다.

고인돌과 채석장을 같이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고인돌이 도로 옆에 밀집해 있고, 산기슭에는 응회암 채석장이 있다. 그 가운데 감태바위 채석장은 여러 가지 고인돌과 채석한 덮개돌, 바위에 나무쐐기를 박은 자국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탐방 동선은 도곡면 효산리에서 진입하는 게 수월하지만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을 보고 출발하면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운주사, 적벽투어 등과 연계한 화순 돌 문화 여행도 할 수 있다. 화순고인돌유적 대신리 발굴지 (061)379-3907

◆정조의 효심이 낳은 성곽의 꽃,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과 용연.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과 용연.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수원 화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더 다양하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정조가 화성 행차 중에 머문 화성행궁에서는 장용영 무사들이 날마다(월요일 제외) 무예24기 공연을 선보이며, 일요일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진행된다.

수원 화성 축성에 관한 이해를 돕는 수원화성박물관, 독특한 기획 전시로 문화 충전을 해주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월화원, 화가이자 여성운동가 나혜석을 기리는 나혜석거리에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화산이 빚어낸 시간 속을 걷다

2007년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으며 2010년에는 산방산, 용머리해안 등 12개 명소가 유네스코 선정 세계지질공원 타이틀을 달았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인 성산일출봉과 성산리, 오조리를 두루 지나는 도보 여행 코스다. 내수면을 따라 7㎞ 남짓 걷는 동안 식산봉과 족지물, 투물러스 지형, 아픈 역사가 새겨진 터진목과 동굴 진지 등을 만난다.

거문오름은 만장굴을 비롯해 여러 용암동굴을 이룬 모체다. 해설사와 함께 신비한 화산지형, 동굴 진지, 곶자왈이 펼쳐진 분화구 안을 탐방한 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를 가면 제주도의 탄생 과정과 지질구조, 한라산의 생태 등을 알 수 있다. 만장굴은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용암동굴로 용암 유선, 용암 선반과 더불어 높이 7.6m에 이르는 용암 석주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주관광공사 (064)740-6074,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1800-2002

◆문무왕 만나러 가는 ‘왕의 길’, 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 호국행사길 표지판.
신문왕 호국행사길 표지판.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가는 ‘신문왕 호국행차길’ 걷기는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이다. 그 길에는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궁궐을 출발한 신문왕의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에 이른다. 수렛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오르는 유순한 길로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다. 중간에 만나는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경북 경주에 있는 월송손씨의 종갓집 서백당.
경북 경주에 있는 월송손씨의 종갓집 서백당.
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둘러보자. 죽은 문무왕이 용이 돼 드나들던 감은사지와 이견대에서 바라보는 대왕암이 감동적이다.

경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이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잘 어우러진 양동마을에서 조선 시대의 풍경과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경주시청 관광컨벤션과 (054)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