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 시각예술로 꼬집었죠"
“우리 사회가 최근 부쩍 흔들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1990년대까지 미국과 옛 소련의 냉전으로 유지되던 이데올로기의 균형이 깨지면서 민족과 종교 간 갈등 및 분열도 더욱 심화되고 있고요. 저도 상식적인 판단으로 살아왔던 것과는 뭔가 다른 현실을 시각 예술로 담았습니다.”

영상·설치·조각·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아티스트 이용백 씨(50·사진)는 오는 19일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하는 개인전을 이렇게 설명한다. 홍익대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이씨는 정치와 사회 그리고 일상의 부조리에 질문을 던져왔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한 이씨는 개관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 작품이 매진돼 작품성과 상품성을 겸비한 작가로 주목받았다.

베니스비엔날레 참석 후 국내에서 처음 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낯선 산책’. 작가가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며 받은 낯선 느낌을 형상화한 설치 작업 11점을 내놓는다. 매체와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조각과 회화, 미디어아트를 넘나드는 작가의 예술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씨는 거울, 알루미늄, 모터, 흡음재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 조각 및 설치, 영상 작품을 통해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을 따온 작품 ‘낯선 산책’은 좌우 6개의 거울, 앞뒤 2개의 거울로 구성돼 있다. 거울들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작품 안으로 들어온 관람객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작가는 “출렁이고 흔들리는 거울 속에 자신이 느끼는 부조리한 현실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깨지는 거울 작업도 그의 특기다. 관람객이 화면 앞에 서면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깨지는 거울 이미지를 담은 설치 작업 ‘미러’이다. “관람객이 거울에 다가서면 깨져요. 그걸 초고속카메라로 찍으면 파편이 터지는 것까지 상세히 보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평화와 전쟁의 공포를 은유적으로 묘사한 5m 크기의 설치 작품 ‘지루하고 흔해 빠진 소재를 작업하는 이유’도 눈길을 끈다. 알루미늄 소재로 날개를 만들어 설치하고, 바닥에 흡음재를 활용해 스텔스 B2 폭격기 모형을 수놓았다. 평화와 희망을 상징하는 날개와 전쟁, 공포을 은유하는 스텔스 폭격기를 대비시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조 꽃 2만 송이를 활용한 영상작업 ‘엔젤 솔저’도 다시 걸었다. 화려한 인조 꽃무더기 속에서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전진하는 장면을 촬영한 작품이다.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는 게 귀찮다는 후배의 푸념을 듣다 착안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대형 포털사이트의 위성 지도에서 착안한 작품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도 색다르다. 네이버 지도상에 표시되는 남한과 북한의 경계 부분은 군사 시설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하얀 공백으로 처리돼 있다. 이 부분을 대형 조각으로 표현했다. 지도상의 공백을 형상화하는 소재로 절연재를 사용했다는 작가는 “정보화 시대에도 지도상에 볼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면서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9월25일까지.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