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아버지·어머니 절절하게 그리겠다"
박근형·윤소정 주인공 맡아…노령화·치매 문제 등 다뤄
◆박근형…치매로 소멸해가는 아버지
“대본을 읽자마자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드라마 등 일정도 모두 조율했죠. 연극은 저의 ‘모태’거든요. 공연장에 갈 때마다 ‘나는 언제 또 무대에 서나’라고 생각했어요. 무슨 작품을 한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함께하고 싶은 욕망이 늘 있었죠.”
박근형은 권위적이던 아버지 앙드레가 치매에 걸려 소멸해가는 과정을 연기한다. 1958년 18세에 마냥 연기하는 것이 좋아 연극배우의 길에 발을 들인 그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 배우가 됐다. 치매 연기만 이번이 세 번째다. “아버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입니다. 저도 그동안 제 욕심 차리느라 좋아하는 일만 하다 보니 가정에 불행을 가져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매에 걸린 그에게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겹친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대목에선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올해 영국과 미국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들이 각각 올리비에상 연기상,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된 작품이다.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연극이 제 인생의 꽃을 피워 줬듯, 저의 마지막 가는 길도 연극으로 꽃을 피웠으면 하거든요.”
◆윤소정…깊은 상실감에 빠진 어머니
“쉬운 작품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러다 이번 희곡을 읽었는데, 배우로서 도전의식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을 하다 보니 배역이 너무 어려워 ‘주제 파악을 잘 못 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신경성 위염까지 걸렸어요. 하하. 그래도 이런 고통이 없으면 작업하는 의미가 없죠.”
윤소정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바쳤지만, 모두가 떠난 뒤 정체성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 안느의 깊은 상실감을 그린다. “아내는 평생 가족을 위해서 살아요. 그건 희생이 아니라 즐거움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바람이 나고, 아들도 여자를 만나 떠나자 더 이상 무언가를 해줄 상대가 없어지는 거예요. ‘행복할 거리’가 없어지는 거죠.”
극 중 안느는 빨간 드레스에 집착한다. 윤소정은 “빨간색은 피, 생명 등을 상징한다”며 “폐경으로 상실감을 느끼는 그가 어떻게든 남편과 아들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 하는 간절함 같은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설명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그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을까. “극 중 주인공 나이가 47세인데, 저도 그 나이를 거쳐 왔어요. 아이들은 자라면 부모를 떠나는 게 순리예요. 그런데 그 순간이 닥치면 견디기가 무척 어려워지죠. 중년 여성들이 자식들이 떠나도 끝까지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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