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국의 닮은꼴' 오스트리아…그곳에 답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거대 제국에서 알프스 산간의 약소국 오스트리아로 전락했다. 국토는 전쟁 전의 4분의 1로 축소됐고 군비 제한, 거액의 전후 배상 책임 등이 더해져 경제는 피폐했다.

이런 와중에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붉은 진영’(사회민주당·오스트로 마르크시스트)과 ‘검은 진영’(기독교사회당·가톨릭 보수주의자)의 이념 대립이 극심했다. 두 진영의 첨예한 다툼은 1934년 시민전쟁으로 치달았고, 파시스트 정권을 거쳐 1938년 히틀러에게 합병되는 비운으로 이어졌다.

나치 합병 후 양 진영의 정치 엘리트 중 다수는 수용소에 수감됐다. 여기서 ‘수용소 사잇길의 신화’가 탄생했다. 철천지원수였던 이들이 함께 고난의 나날을 보내면서 역사적 과오를 통절히 반성하고 앞날의 협력을 약속했던 것. 교조적 이념정당에서 벗어나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들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제2공화국을 탄생시켰고,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이자 강소부국으로 발돋움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으로 지난해 오스트리아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4598달러로 독일(4만901달러)보다 많다.

[책마을] '한국의 닮은꼴' 오스트리아…그곳에 답이 있다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는 이런 오스트리아를 거울 삼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한다. 저자인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는 1960년대 빈대학교에서 유학한 이래 평생 가져온 학문적·실용적 관심사를 이 책에 집약했다.

저자가 오스트리아에 주목하는 건 한국과 닮은 점이 많아서다. 오스트리아는 한국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도 닮았다. 서구의 변방, 동서의 교차로에 자리한 오스트리아는 서구의 선진화된 여러 나라에 비해 자유주의의 세례, 산업화, 민주화에서 모두 뒤졌다. 2차 대전 이후 전승국들에 의해 분할 점령됐고, 공산화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았던 점도 닮은꼴이다.

그런데도 오스트리아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고뇌했던 통일, 경제발전, 정치적 민주화, 노사협력, 복지국가 건설, 국민통합 등 국가적인 핵심 과제를 대부분 달성했다. 저자는 이를 ‘오스트리아 모델’이라 명명하고 이 모델이 구축되고 재편되는 전 과정을 관통하는 요인으로 합의와 상생, 대타협, 융합과 재창조를 꼽았다. 또한 오스트리아 모델의 핵심 내용을 △중립화 통일 △합의제 정치 △사회적 파트너십(노사정 협의체제) △생태사회적 시장경제 △사회투자형 복지국가 △국민적 정체성의 6가지로 설명한다.

합의제 정치는 우리로선 정말 부러운 전통이다. 제2공화국 건국 이후 지금까지 68년 중 41년을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간의 대연정으로 통치했다. 1955년 국가조약과 1995년 유럽연합(EU) 가입, 2008년 경제위기 극복 등 국가적 과제를 성취한 것은 이 덕분이다.

사회적 파트너십을 통해 계급투쟁을 협상 테이블로 옮긴 점도 돋보인다. 오스트리아가 ‘파업이 없는 나라’ ‘축복의 섬’으로 불리는 것도 이 덕분이다. 저자는 “오늘날 오스트리아의 번영은 합의제 정치와 사회적 파트너십이라는 두 겹 합의체제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1970~80년대에 갖춘 선진 복지국가의 틀을 이후 여러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에 대응해 개혁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경제적 효율성과 기존의 시민주의적 복지국가가 표방했던 사회적 형평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이른바 ‘제3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며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지향하는 사회투자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우리가 뭘 배울 것이냐다. 저자는 주요 정치세력들 간의 대화와 소통 및 대타협, 실효성 있는 노사정 거버넌스 체제 구축, 자유시장경제를 보완한 생태사회적 시장경제로의 업그레이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이념 논쟁에서 벗어난 정책 혼합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강원 고성군에서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집필에 열중해 ‘농부가 된 부총리’로도 유명한 저자의 진심 어린 조언이 설득력을 더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