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차트 1위요? 한국어 곡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 마치 영화 '트루먼 쇼'나 몰래 카메라 같아요."

전 세계에 '강남스타일' 열풍을 일으킨 싸이(본명 박재상·35)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각종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는 자신의 상황이 비현실적인 듯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강남스타일'을 발표한 지 두 달여 만에 유튜브, 빌보드, 아이튠즈에서 한국 가수로는 최초·최고 기록을 세우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세계 곳곳에서 마치 '놀이'처럼 뮤직비디오 패러디물이 쏟아졌고 해외 팝스타, 할리우드 스타들이 '강남스타일'에 매료됐다.

한국 가수로는 처음 글로벌 대중 스타로 떠오른 싸이는 지금 국내 대중음악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그의 기록 행진과 열풍의 배경을 알아봤다.

◇유튜브·빌보드·아이튠즈 '그랜드슬램' = '강남스타일' 열풍이 시작된 진원지는 세계적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26일 오전 조회수 2억7천800만 건을 넘어섰다.

지난 7월15일 유튜브에 공개된 이 뮤직비디오는 52일 만인 지난 4일 조회수 1억 건, 60일 만인 지난 12일 1억 5천만 건, 66일 만인 지난 18일 2억 건, 72일 만인 지난 24일 2억 5천만 건을 돌파했다.

역대 유튜브에 오른 한국 콘텐츠 사상 처음으로 조회수 1억 건을 돌파했고 최단기간 최고 누적 조회수 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 유튜브가 지난 25일 집계한 '유튜브 전 세계 누적 조회수 톱 100'에서 28위에 올랐다.

유튜브코리아 관계자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1억 5천만 건을 돌파한 직후인 지난 13일 집계된 '전 세계 누적 조회수 톱 100'에서 76위로 진입했으며 12일 만에 48계단이 뛰어 28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높은 조회수에 힘입어 이 뮤직비디오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가 인증하는 유튜브 사상 가장 많은 사용자가 추천한(좋아요·like) 비디오로 선정됐다.

뮤직비디오의 세계적인 확산에 힘입어 '강남스타일' 음원도 해외 음악 차트를 강타했다.

전 세계 가수에게 꿈의 차트인 빌보드에서는 싱글차트 '핫 100'에 64위로 진입해 한국 가수 최고 기록을 세운 뒤 일주일 만인 지난 19일(현지시간) 53계단이 뛰어 11위를 기록하며 '톱 10' 진입을 눈앞에 뒀다.

싸이는 "한국어 곡으로 64위에 처음 진입했을 때 울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후 11위에 오르니 '(1위가) 될라나'하는 마음이 생겼다"며 "이번 주 순위가 한자릿수인 건 확실한 것 같은데 향후 1위에 오른다면 많은 시민이 있는 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상의를 탈의한 채 '강남스타일'을 선보이겠다"고 부푼 기대감을 나타냈다.

음악 전문가들도 이번 주 차트에서 '강남스타일'이 '핫 100'의 '톱 10'에 진입할 것이며 지금과 같은 상승세라면 1, 2위도 바라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스웨덴 그룹 아바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댄싱 퀸(Dancing Queen)' 한 곡밖에 없을 정도로 빌보드 정상은 어렵다"며 "싸이의 경우 1위를 속단할 수 없지만 101위에서 64위, 11위를 기록하는 상승세를 보면 '톱 10'은 확실시된다.

1-2주 지나 1위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싸이가 '핫 100'의 정상에 오를 경우 아시아 출신 가수로는 두 번째 정상을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가수는 1963년 '스키야키'란 곡으로 3주 연속 정상을 차지한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가 유일하다.

싸이가 정상에 오르면 49년 만의 일로 빌보드에서 아시안 팝의 역사를 새로 쓰는 셈이다.

앞서 지난 2010년 한국계 멤버 등 아시아계로 구성된 미국 힙합그룹 파이스트무브먼트가 이 차트 1위에 올랐지만 국적과 음반유통사 모두 미국이었다.

또 아이튠즈 음원 차트에서도 '강남스타일'은 25일 35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며 아이튠즈 월드와이드 차트(전 세계 아이튠즈 순위를 통합해 집계하는 차트) 1위를 지켰다.

이 차트는 전 세계가 디지털 음악 환경으로 변하며 실질적인 인기가 반영된 지표로 여겨진다.

미국에서는 지난 15일 이후 10여 일째 1위를 지켰으며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그리스, 폴란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 35개 국가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또 오스트리아, 스위스,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니콰라과에서는 2위를 기록하는 등 차트 10위권에 진입한 국가도 20개국이다.

이 밖에도 영국에서는 음반 순위를 집계하는 오피셜 차트 컴퍼니(the Official Charts Company)에서도 싱글 부문 3위에 올랐다.

임진모 씨는 "현재 3위인 영국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할 경우 싸이는 영미 차트를 석권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오랜 염원을 풀어주는 쾌거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 열기에 힘입어 내년 2월 열릴 그래미상 시상식의 신인상(Best New Artist)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도 조심스레 관측되고 있다.

전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가 수여하는 '그래미상'은 팝 최고 권위의 시상식으로 비영어권 가수에게는 배타적이지만 올해 싸이의 두각을 감안할 때 꿈꾸지 못할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B급 코믹 뮤비·음악·춤.."웃겨서 떴다" = 유튜브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등 디지털 미디어가 확산의 견인차였지만 B급 정서가 담긴 코믹한 뮤직비디오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신드롬은 가능하지 않았다.

싸이는 성공 비결에 대해 "가수인데 웃겨서 성공한 게 웃기지만 웃겨서 잘 된 것 같다.

심각하지 않아 신선하다는 말도 들었다"며 "난 태생이 B급인데 그런 걸 만들 때 소스라치게 좋다.

해외에서는 (뮤직비디오 속) 내가 '오스틴 파워'(영화 '오스틴 파워' 주인공), 리틀 싸이로 나온 어린이가 미니미 같다고 한다.

나보다 뮤직비디오가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임진모 씨도 "뮤직비디오는 첫 장면부터 웃긴데 서구인들에게 재미와 재롱을 동시에 줬다"며 "뮤직비디오를 보면 유쾌해진다.

유튜브에서 최다 추천 비디오가 된 것도 그런 이유"라고 평했다.

싸이와 작업한 적이 있는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 홍원기 씨 역시 "싸이만이 할 수 있는 촌철살인의 유머를 쉽게 풀어냈다"며 "또 놀이터, 버스, 목욕탕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마지막엔 이들이 함께 군무를 추는데 싸이는 늘 대중을 아우른다는 생각이 확고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어 가사지만 흥겹고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 따라 추기 쉬운 춤은 인터넷상의 관심이 현지 대중문화 속으로 친숙하게 파고드는 역할을 했다.

'강남스타일'은 팝 시장의 대세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곡이고 '말춤'은 어린이들도 따라 추기 쉬울 정도로 중독성을 지녔다.

임진모 씨는 "대중음악에서는 따라 부르고 춤추기가 가능하면 대박의 첫 번째 조건"이라며 "'강남스타일'은 모든 걸 갖췄다"고 설명했다.

싸이와 함께 '강남스타일'을 작곡한 유건형 씨는 "'강남스타일'은 트렌드에 뒤처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만들어 영미 팝 시장의 트렌드인 일렉트로닉 팝"이라며 "베이스 라인이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사운드가 특징으로 '말춤'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집단 댄스가 가능한 '말춤'으로 전 세계를 재패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춤의 힘은 컸다.

이 춤을 만든 안무가 이주선 씨는 "사실 아주 쉬운 동작은 아닌데 봤을 때 따라 추기 쉬워보인다"며 "또 싸이가 독특하고 재미있게 잘 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미국의 '러브콜'을 받은 싸이가 영어를 구사해 발 빠르게 현지 프로모션이 가능했던 점도 한몫한다.

지금껏 많은 가수가 미국 진출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영어 공부를 해야 했다.

싸이는 "대학 다니며 미국에서 4년 정도 살아 영어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며 "영어로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에서 한국어로 번역하고 다시 영어로 말한다.

그 와중에도 남의 나라에서 웃기고 싶어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말했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여줬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