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딱 66년 전인 1944년 9월24일 중국 충칭(重慶)의 실험극장.37세의 젊은 역사학자 리둥팡(黎東方 · 1907-1998)의 삼국지 강연에 300여명의 청중이 모였다. 중 · 일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피폐한 상황에서도 20프랑의 입장권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열흘 동안 계속된 강연에서 리둥팡은 살아있는 듯 생생한 언어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켰고,강연은 미증유의 성공을 거뒀다.

《삼국지 교양 강의》는 그의 이 강연을 정리해한 책이다. 리둥팡은 칭화(淸華)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중국 근대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정통 사학자다. 60년 이상 세월이 지나서도 그의 역사 강연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탁월한 솜씨와 오로지 사실(史實)에 근거해 《삼국지연의》류는 물론 정사(正史)의 오류까지 지적해내는 그의 학문적 태도 때문이다.

그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게 했다는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의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황개가 건초를 실은 배에 불을 붙이고 조조군의 배로 접근한 것은 수력을 이용한 것이지 바람 덕분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한 무예는 출중하나 성격이 급하고 지략이 부족한 인물로 알려진 장비가 사실은 글씨를 아주 잘 썼고 문인화를 그리는 문사였다고 바로잡는다.

특히 역사서를 읽노라면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관직이름과 지명에 대해 대단한 공을 들여 고증하고 사실을 확인해준다. 가령 《삼국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적벽대전은 엄밀히 말하면 적벽(赤壁)이 아니라 오림(烏林)에서 벌어졌다고 그는 설명한다. 적벽은 장강의 남쪽에 있고,오림은 그 맞은편인 장강의 북쪽에 있는데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장강을 건너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조조군 진영을 공격했으므로 적벽대전이 아니라 오림대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영화 등의 작가와 연출가에 대해서도 "'문화예술'이라는 글자를 면죄부처럼 내밀며 옛사람들을 제멋대로 평가하고 지금 사람들을 속일 특권이라도 지닌 양 전횡을 저지른다"며 "옛사람은 이미 죽어 항의할 방법이 없고,지금 사람들은 사기를 당해 뭘 모르니 후환이 무궁하다"고 경고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