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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록달록 현대미술, 겸재·추사에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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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고재갤러리, 고·현대미술 유쾌한 동거 '춘추'전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지하 2층 전시장.조선시대 '진경 산수의 거장' 겸재 정선(1676~1759년)의 '박연폭포'(119.5?C52.2㎝)가 폭포의 길이를 두 배로 늘려 우렁찬 위세를 자랑하고,여기에 서양화가 이세현씨의 2009년 작 '붉은색 사이로'(200?C600㎝)는 병영시절 가슴 한쪽에 숨겨둔 아련한 기억과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빨간색 미감으로 응수한다. 30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두 작가의 아름다운 '동행'이 우리 시대의 미감과 교감하며 더욱 빛을 발한다.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가 내달 1일부터 10월31일까지 펼치는 '춘추'전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다. 고려,조선시대 대가들의 필적이나 화풍을 통해 현대미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주제는 공자가 편찬한 역사책 '춘추'로 붙였다. 한국 미술이 그동안 대의명분을 중시하며 '춘추화법'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는 의미에서다.

    이세현씨와 겸재를 비롯해 '서양화가 김홍주-석파 이하응' '리경-추사 김정희' '송현숙-백하 윤순' '정주영-겸재 정선' '정현-몽인 정학교' '한계륜-황산 김유근' '윤석남-작가 미상의 방목도' '이영빈-조선시대의 여인 초상' '이용백-고려불화' 등 11쌍의 작품이 서로 짝을 지어 걸린다. 작업을 진행하는 방법이나 조형의 결과물에서 다른 분위기를 내는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왕가의 '파락호'(난봉꾼)에서 대원군으로 신분을 바꾼 석파 이하응(1820~1898년)의 난초 그림 '석란첩'은 바람에 흩날리는 난초를 수직과 수평선,수묵의 색감으로 묘사해 절제미가 뛰어나다. 그가 서양화가 김홍주씨의 작품을 봤다면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세필로 한땀 한땀 나뭇잎을 형상화한 '무제'는 무엇을 그리기보다 회화가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의미를 녹여낸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묵란도라 할 수 있다.

    조선 말 광화문 중건 당시 현판을 쓴 것으로 알려진 서화가 몽인 정학교(1832~1914년)의 그림 '죽석도'는 중견 작가 정현씨의 조각 '무제-성찰'과 마주 걸린다. 작은 바위와 숲,대나무를 날카로운 필법으로 그려낸 '죽석도'는 마치 정씨의 조각을 드로잉한 것처럼 보인다.

    겸재의 '인왕산도'와 서양화가 정주영씨의 '인왕산'은 풍경의 아름다움을 씨 · 날줄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겸재가 한국적 미감을 그대로 살려내 인왕산의 위용을 그렸다면,인왕산 바위를 그린 정씨의 그림은 나날이 변화하는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미디어 영상설치 작가 한계륜씨의 작품과 나란히 걸린 조선시대 문인화가 김유근의 수묵 산수화 '소림단학도'의 공통 분모는 '무위 자연'이다. 한씨는 강 위에 한 척의 배가 떠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잡아내 소란한 세상에도 꿈쩍하지 않는 자연을 현대적으로 묘사했다. 반면 황산은 배를 타고 먼 산을 바라보는 강태공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냈다.

    한폭의 그림을 놓고 이만한 사고의 폭과 이미지의 응축을 뽑아내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감칠맛 나는 서예 솜씨 또한 재미를 더한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의 '행서'는 자신의 화풍을 추종하며 난초를 잘 그렸던 노천 방윤명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송나라 문호 소식의 '취옹조(醉翁操)''하신랑(賀新郞)''수조가두(水調歌頭)''동선가(洞仙歌)'를 일필휘지로 써내린 이 작품에서는 외형적 정제성이나 기법적 완숙도가 느껴진다. 여기에 추사의 삶을 롤 모델로 삼고 살아 온 젊은 작가 이경씨는 빨간 스팽글로 뒤덮은 자신의 몸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대가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이 밖에 윤석남씨의 강아지 조각 '견공지몽(犬公之夢)'과 활기차게 뛰어노는 말들의 기상을 그린 조선시대 작가 미상의 '방목도'는 삶의 에너지를 만끽하고 싶어하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우찬규 대표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미술의 독자성,뿌리의 실체에 실질적으로 다가서면서 엄중한 대의명분을 지닌 '춘추화법'을 두 작가의 작품에 견주어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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