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조각은 어떤 형상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들춰내는 행위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과 현대 산업사회의 상징인 철판을 한 장소에서 아우르면서 인간과 자연,산업사회의 대화를 꾀하거든요. "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우환 화백(73 · 도쿄다마미술대 교수 · 사진)의 조형론이다. 미술가이자 철학자인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는 '점''선''조응'시리즈의 회화로 유명하지만 일본과 유럽에선 조각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40여년 조각 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28일부터 10월9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화백은 1970년대를 전후해 출현한 '모노하(物派)'운동의 선구자다. 모노하는 나무,돌,점토,철판 등 자연 소재를 '있는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공간,위치,상황 등에 따라 각각의 고유성이 발현되도록 하는 동시에 공명효과를 노리는 미학 장르.1971년 제7회 파리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돼 유럽 화단에서 주목받았다.

국내에서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조각'.돌과 철판,공간,인간성 등 네 가지를 가지고 서로의 관계를 구현한 작품 '관계항'시리즈 10점이 출품됐다. 순수 자연물과 사물(인공물)은 어떤 관계를 맺는지,사물과 인간은 어떤 관계로 정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형상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독일 본시립미술관과 프랑스쥐드폼미술관 등에 걸리면서 이 화백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됐다.

철판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이고 돌은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돌이다. 작가는 철판과 돌의 대비를 통해 이들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조각 작품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가 핵심이다. 작가는 철판과 돌을 전시장에 설치해 새로운 관계를 창출한 것이다.

"정체가 모호한 이야기와 다양한 정보에 인간은 혼이 빠져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공간과 시간의 힘을 빌려 이들에게 잠시 침묵에 귀 기울이게 할 것입니다. 자연석과 철판을 관계지음으로써 조용히 우주와 만나게 하고 싶거든요. "

조각도 회화에서 처럼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돌과 철판만 있을 뿐이지 조형이나 제작된 형태의 조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선 회화와 흡사하다.

실제 이 화백의 예술가론은 독특하다. "제 작품은 철판과 돌을 빌려온 것뿐이기 때문에 저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는 "이 화백의 작품은 사물과 공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며 "이는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면서 감성과 사유의 조화를 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