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에 제작비를 줄여야 하는 할리우드가 스타들에게 '노(no)'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영화 한 편당 수천억원의 '몸값'을 챙기며 부와 명성을 과시하던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도 경기침체의 한파는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월지(WSJ)는 3일 불황으로 영화제작사들이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흥행 여부에 상관없이 배우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지급하던 계약 관행이 깨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몸값 낮아진 할리우드 스타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선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도 배우에게 매출의 일정 비율을 출연료로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때문에 영화 수익보다 많은 돈을 받는 배우들이 넘쳐났다. 에디 머피는 흥행에 참패한 영화 '데이브 속 데이브(Meet Dave)'를 통해 2000만달러를 받으며 '할리우드 몸값 신기록'을 깼다. 7000만달러가 투입된 이 영화는 미 박스오피스에서 그의 출연료보다 적은 118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 같은 기현상은 '옛말'이라고 WSJ는 전했다. 경기침체로 제작사들이 영화 제작 편수를 줄이고 비용절감에 나서면서 부르는 게 값이던 톱스타의 몸값도 타격을 받고 있는 것.대신 영화가 본전을 뽑은 후 수익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스타들이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챙기는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 확산되고 있다.

파라마운트영화사는 최근 '모닝글로리'에서 주연을 맡은 해리슨 포드와 '얼간이들을 위한 만찬'에 출연한 스티브 캐럴에게 이 같은 방식으로 출연료를 지불했다. '인디애나 존스'로 스타덤에 오른 해리슨 포드는 그가 평소 받던 금액보다 수백만달러 낮은 800만달러를 받는 데 그쳤다. 유니버설스튜디오도 내년 개봉 예정인 '로빈후드'(가제)의 주연 배우 러셀 크로에게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유니버설은 1억3000만달러의 제작비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니컬러스 케이지('마술사 실습생'),짐 캐리('예스맨') 등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했다.


◆돈줄 마르고,DVD도 안팔려


배우 짐 캐리와 앨런 디제너러스 등의 매니저와 제작을 담당하는 에릭 골드는 "스타가 원하는 대로 돈을 받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경제가 어려우면 흥행 보증수표인 할리우드 유명 배우라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불황 '무풍지대'이던 할리우드도 전 세계적 경기침체를 피해갈 순 없었다. WSJ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6개월 전부터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월가가 금융위기로 불황 직격탄을 맞으면서 매년 수십억달러에 달하던 자금줄이 마른 데다,영화사의 주 수입원인 DVD 판매가 급감하면서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한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신문은 또 "유명세를 무기로 손쉽게 과실을 따먹던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호시절이 지나갔다"며 "배우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대느라 어깨에 큰 짐을 졌던 영화제작사들이 고통을 덜기 위해 출연료 지급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연예계도 불황 한파


한국 연예계는 어떨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톱스타들의 드라마 출연료는 '한류' 붐을 타고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방송계 안팎에서 출연료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 1회 출연에 송승헌 7000만원,이정재 5000만원,최지우 4800만원 등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02년만 해도 이들의 회당 출연료는 5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출연료 거품이 경기불황을 타고 조금씩 꺼지고 있다. 2~3년 전에 비해 스타들의 몸값이 30%가량 하향 조정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드라마PD협회에 따르면 큰 인기를 모은 '태왕사신기''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제작한 김종학프로덕션마저 지난해 74억원가량의 적자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올리브나인 초록뱀미디어 등 다른 제작사들도 마찬가지다. 스타 스스로 출연료를 낮추거나 계약금 없이 출연 계약을 맺는 모습도 나타났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인기 배우들마다 '너무 높은 몸값을 부르면 오히려 망한다'는 승자의 저주를 의식하는 모습이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