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조각하는 손은 마술 같은 창작 도구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놓는가 하면 아름다운 풍경과 생각을 잡아내기도 한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의 '위대한 손'(12일~4월5일)은 이처럼 손을 주제로 한 전시다.

'손길의 흔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전시에는 원로작가 황인기씨를 비롯해 전광영 노상균 심수구 존배 이지현 정광식 김유선 김정주 김지민 신성희 유봉상 유승호 윤종석 이길우 이동재 이재효 이지현씨 등 현대미술가 17명의 그림 · 사진 · 조각 및 설치 작품 50여점이 걸린다.

작품의 표면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기술적 탁월함,높은 완성도까지 작가들의 손을 통한 예술작품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수 천개의 스티로폼을 고서로 싼 뒤 이를 하나하나 쌓은 전광영씨의 1.6m 대작 '집합'.세모꼴 오브제들을 짜맞춘 화면이 퍼즐조합을 연상시킨다.

작가의 머리 속에서 탄생됐을지라도 현실로 구체화되는데 손길과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큐빅이나 레고를 하나하나 붙여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든 황인기의 '레고'시리즈에서도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전통 동양화법을 디지털 코드로 입력한 수공의 '아날로그적 화법'이 이채롭다.

구리선을 용접해 독특한 조형물을 만든 존배씨,싸리나무를 쌓아 그 단면으로 이미지를 구축한 심수구씨,글자를 낙서처럼 반복적으로 써 산수화를 그린 유승호씨,물감을 주사기로 쏘아 회화 작업을 한 윤종석씨,쌀알 · 콩알을 붙여 화면을 만든 이동재씨,금속과 합성수지 등으로 만든 작은 조각을 평면이나 오브제에 수없이 붙인 노상균씨,돌의 평면을 부조처럼 깎아 회화적인 화면을 만든 정광식씨,의류 상표를 모아 작업한 김지민씨,책의 활자를 해체한 이지현씨,향불로 종이에 구멍을 내 묘한 화면을 만든 이길우씨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현대의 도형대 대표는 "이들 작품은 물리적 시공간의 영역을 넘어 영원히 분할할 수 없는 무한 의식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02)734-611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