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섬 부자다. 삼면의 바다에 섬이 4400여개나 있고 그 중 유인도가 500여개나 된다. '떠돌이 시인' 한 사람이 10년 동안 모든 유인도를 답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3년 동안 100여개의 섬을 걸었다. 《섬을 걷다》는 그 기록이다. 거제 통영 완도 옹진 신안 군산 제주 강화 여수 대천의 섬들까지 꼼꼼하게 찾아가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섬과 섬 사람들의 삶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지혜와 여유,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연화봉 정상에서 보면 연화도는 연꽃 모양이 아니다. 섬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연화도의 이름이 섬의 형상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그보다는 연화도 욕지도 두미도 상노대 하노대 갈도 국도 세존도 미륵도 연대도 등의 섬들이 둥그렇게 펼쳐져 그리는 모습이 흡사 연꽃 같다. "

연화도는 서로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섬들의 연대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오른 것이 연화세계임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 삶의 이상향도 서로 의지하여 이루는 것임을 일깨운다. 옹진 자월도의 장골 해안에서 굴을 캐는 할머니들은 또 어떤가. 얼핏 별개인 것 같은 바다와 달과 사람이 실은 서로 얽혀 있는 관계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굴은 달이 차고 기우는 데 따라 여물기도 하고 야위기도 한다. 섬사람들도 굴처럼 살이 올랐다 야위었다 한다. 섬사람들은 달의 자손이다. 달이 바닷물을 밀었다 당겼다 하며 바다 것들을 키우면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고둥과 소라와 굴들을 얻어다 산다. "

제주와 완도의 중간쯤에 있는 완도 여서도의 돌담은 마을의 집들을 가르는 경계이면서도 이웃과 소통하는 장치다. 돌담 중간에 네모나게 뚫린 구멍이 그 통로다. 사람들은 이 구멍으로 물건을 주고받고 소식을 나눈다.

제주 가파도의 구멍 숭숭 뚫린 돌담에도 지혜가 담겨 있다. "혼자 있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담이지만 거친 해풍을 막아내며 무너지지 않는 것은 저 구멍으로 바람을 통과시키며 바람으로부터 섬의 안전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전해준다.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인 것이다. 대립하고 거스르는 데 익숙한 도시와 달리 섬사람들은 바람이 지나갈 샛길을 만들어주고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

시인은 말한다. "나그네가 순례길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스승은 인도나 티베트 고원,히말라야 설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수를 해서 잡아온 성게를 까던 팔순의 가파도 해녀,자식들을 위해 학꽁치를 손질하던 거문도 할머니,갯벌에서 망둥이를 잡던 비금도 할아버지,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생애의 스승이고 나침반이었다. "

문명과 개발과 소비 풍조에 물들어가는 섬에 대한 안타까움도 진하다. 많은 섬에서 고기잡이나 수산물 채취,양식업 등으로 도시 노동자의 소득을 뛰어넘지만 만족을 모르는 삶은 섬사람의 인정을 갉아먹고 섬의 농경문화도 단절시키고 있다는 것.또한 평화로운 수면 아래에 놓인 덫과 그물들로 물 속은 온통 지뢰밭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미 많은 섬이 육지와 연결되었고,머잖은 장래에 대부분의 섬이 사라질 것"이라며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한다. 그가 오늘도 섬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이유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