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잃은 선풍기. 받침대도 없다. 모터 부분만시체의 잔해처럼 남아 지난 여름을 기억케 한다. 서울 동숭동의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에서 개인전(10월 7일까지)을 여는 작가 신영성씨. 그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제목의 전시회에 선풍기 모터 100대를 오브제로 한 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겉모습을 완전히 상실한 선풍기 잔해들은 일견 처참하다. 모터가 전선에 간신히매달려 있는가 하면 무표정한 모습으로 전시장을 조용히 응시하기도 한다. 전원이 연결된 몇몇 모터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애써 알려보나 바람을 일으키는 기능은 잃은 지 오래다. 신씨는 1980년대부터 한국화단을 지배하는 엘리트 정신주의에 회의를 품어왔다. 그리고 버려지고 소외된 인간군상에 주목했다. 그룹 `난지도'는 그 소산이다. 이 단체는 물질문명이 유린한 현실의 실체를 드러내며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전시회 역시 그와 맥이 닿는다. 벽에 가지런히 걸린 선풍기 모터들은 뜨거웠던 여름날의 부지런한 노동을 증언한다. 지금은 비록 폐기처분이라는 운명을 맞았고, 과거는 바람처럼 아득하게 사라졌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실재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다가올 또다른 여름을 꿈꾸며 예비한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