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개척사를 뒤집으면 인디언 멸망사가 된다. 미국인들이 흔히 내세우는 '프런티어 정신'은 백인 입장에서는 모험과 용기, 인내를 의미하는 진취적 이념이었지만 인디언에게는 땅과 목숨을 빼앗아가는 파괴와 탐욕의 정신이었다. 인디언은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다. 백인들은 광활한 평원과 삼림을 빼앗고 이들을 늪지대나 불모지로 몰아넣었다. 미국 논픽션 작가 디 브라운의「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나무심는사람刊)는 서부개척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백인들의 잔인한 약탈과 그에 맞서 싸운 인디언들의 눈물겨운 투쟁, 그리고 비운의 멸망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얼마나 많은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욕망을 위해 죽었는지,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인디언 부족들이 자기네 땅에서 쫓겨나 풀도 자라지 않는 황폐한 '보호구역(레저베이션)'으로 내몰려 끝내는 사라져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여러 해에 걸쳐 수집한 재판 및 회의 기록, 자서전, 생존 인디언들의 구술을 인용해 이 책을 썼다. 여기 실린 비극의 역사는 전세계 양심적 지식인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미국 인디언들을 다룬 책들 가운데 고전으로 꼽히게 됐다. 이 책은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1492)에서부터 인디언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운디드니 학살(1890)에 이르기까지 400여년에 이르는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역사를 담담하게 개괄한다. 인디언들의 삶의 철학, 그들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 인디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백인들과의 우정도 그려진다. 이 책에는 나바호족, 수우족, 샤이엔족, 크로우족, 네즈페르세족, 아파치족 등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과 마누엘리토, 붉은구름, 검은주전자, 앉은소, 제로니모 등 평화주의자이며 자연보호주의자였던 위대한 추장들과 전사들이 등장한다. 책을 읽다보면 인디언에 대해 얼마나 오해가 많았던가를 알게 된다. 예컨대 인디언들은 '백인을 죽여 머리가죽을 벗기는 야만인'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백인들이 먼저 인디언들의 머리가죽을 벗겼다. 오글라라 수우족의 추장 붉은구름은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고말한다. 백인들의 이익을 위해 강요된 인디언들의 희생이 정당화됐던 시기, 서로 다름이 존중되지 않았던 그 시기를 보며 분노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준석 옮김.704쪽. 1만8천원.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기자 ke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