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

''조선왕조실록''에 3천번 이상 언급된 조선 최대의 당쟁가.

우암 송시열을 일컫는 말이다.

성인과 악마라는 극단적 찬사와 저주 사이에 놓인 그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송시열을 둘러싼 3백년 신화의 가면을 파헤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1만9백원)가 출간됐다.

저자는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2''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이덕일씨.

그는 "대부분의 신화들이 과장됐거나 상당부분 조작돼 있듯이 송시열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송시열은 83세때 ''죄인들의 수괴''라는 애매한 죄목으로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당시 노론(老論)의 수장이었던 그는 당파 싸움에 밀려 처형당했다.

그러나 그는 죽고 난 이후 다시 노론이 집권하면서 유학자로서 가장 큰 영광인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묻혔을 뿐 아니라 공자·맹자·주자처럼 ''송자''로 불리는 영광을 누렸다.

나아가 지금까지도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송시열에 대한 우상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씨는 "우암은 당시 민중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를 거부한 시대착오적인 인물이었다"고 꼬집는다.

송시열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그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그 세력은 조선이 멸망한 뒤에도 권력을 유지함으로써 송시열이 성인으로 추앙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씨는 "우암은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인 만큼 그 시대와 현재에 미친 그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엄격하고 냉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