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영화계는 대기업들의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격심한 지각변동을
겪었다.

대기업들의 영화참여는 그간 비디오 판권 확보를 위해 제작비를
지원하는 정도였으나 금년부터는 기획, 제작은 물론 외화수입 및 배급에
까지 관여할 만큼 본격화됐다.

삼성은 올해 "총잡이" "돈을 갖고 튀어라" 등 9편을 제작 지원했으며,
대우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등 8편을
공동 제작했다.

이들 양대산맥이 참여한 영화는 비디오 판권 투자분을 더해 30여편.

올 개봉영화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이밖에 해태가 "헤어드레스", 미원이 "천재선언", 선경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제작비를 투자했으며 진로 코오롱 쌍용 벽산 현대
동양그룹 등도 직간접으로 영화에 뛰어들었다.

대기업들은 배급망 확충에도 발벗고 나섰다.

삼성이 캐롤코, 미라맥스와 계약한데 이어 유럽의 폴리그램과 협상
중이고 대우는 미국의 뉴라인과 2년간 20편의 국내 독점배급계약을
체결했다.

드림웍스 SKG의 최대주주인 제일제당은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와 손잡고
아시아시장에 진출하며 SKC도 모건 클릭, 시너지와 배급계약을 맺었다.

대기업의 영화진출은 자본력과 영화시장의 확대에 기여했지만 기존
영화사와 감독들을 하청기업으로 전락시키거나 상업주의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작가정신보다 "돈"을 앞세운 코믹액션영화가 양산된 것은 그 대표적 예.

애니메이션영화제작이 활발해진 것도 올 영화계의 특징.

돌꽃컴퍼니의 "홍길동"과 영프로덕션의 "헝그리 베스트5",
(주)아마게돈의 "아마게돈"이 제작됐으며, 제이콤과 쌍용이 각각 제이콤
애니메이션과 씨네드림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만화영화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제작돼 심의를 마친 영화는 지난해보다 2편이 적은 63편.

이중 "태백산맥" "영원한 제국" 등 48편이 세계 60곳의 영화제에 출품돼
제작은 줄고 해외진출은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흥행면에서는 외화 "다이하드3"가 95만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한국
영화로는 38만2,000명을 동원한 "닥터봉"이 수위를 차지했다.

올해의 최고 화제작으로는 현재 18만명을 넘어서며 장기상영에 들어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꼽혔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