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양자 등 차세대 기술에 특화한 소프트웨어 개발도구(SDK) 경쟁을 시작했다. 각자 내놓는 반도체에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엮어 새로운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시도다.

"AI·양자 소프트웨어, 우리 것 쓰세요"…치열해진 반도체 업계 SDK 마케팅
5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기업인 사피온은 오는 5월 자체 AI 반도체 SDK를 공개한다. SDK는 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쓰는 소스와 도구 모음이다. 이를 공개하면 다른 기업들이 사피온 소스를 바탕으로 각자 원하는 기능을 더해 자체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다. 사피온 관계자는 “기업들이 보다 수월하게 사피온의 칩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지난달 말 양자 칩 SDK를 출시했다. 인텔의 양자 칩과 연동해 양자 알고리즘과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도구모음이다. 파이선과 C언어, C++언어 등을 지원한다. 인텔은 향후 내놓을 양자 하드웨어에도 이 SDK를 엮을 계획이다.

이들이 자체 SDK를 공개하는 것은 신시장에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SDK를 확산시키면 전체 시장이 중장기적으로 자사 표준과 프로그래밍 언어구조(프레임워크)를 따라갈 가능성이 커진다. 다른 기업들의 자사 하드웨어 의존도도 높일 수 있다. ‘쿠다’ SDK로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엔비디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엔비디아는 2007년 2월 쿠다를 공개했다. 엔비디아 GPU를 쓰는 기업들은 쿠다를 기반으로 여러 응용프로그램을 짰다. 기업이 이렇게 엔비디아 생태계에 들어오면 이후 인프라를 확장할 때 AMD를 비롯한 다른 기업의 GPU를 대규모 사들여 운용하기가 쉽지 않다. 쿠다와 다른 기업의 SDK는 서로 프레임워크가 달라 까다로운 연동 작업을 별도로 거쳐야 해서다. 2021년 작년 초 비트코인 채굴, 메타버스 신사업 등 GPU 수요가 겹쳐 엔비디아 제품 가격이 확 뛰었을 때도 기업들이 GPU 다변화에 나설 수 없었던 배경이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