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리 인상 여파로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됐지만 갓 설립했거나 이제 막 사업에 착수한 ‘초기 스타트업’을 찾는 투자자들의 발길은 여전히 분주하다. 가격이 쌀 때 성장성 있는 기업을 찜해 두고 펀드 만기에 맞춰 그들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되는 5~7년쯤 뒤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원석’ 발굴에 나선 산업 분야는 어디일까.

올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드 투자(기업 설립단계 투자) 자금이 가장 몰린 분야는 블록체인으로 조사됐다. 암호화폐 가격 하락과 루나·테라 사태에도 투자자들은 여전히 이 분야 신생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베팅했다. 헬스케어·바이오테크 분야의 신생 기업에 대한 투자 열기도 높았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지역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해 전통 벤처 강국 이스라엘과 창업 열기가 높은 중국에서 신생 스타트업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이스라엘, 중국의 스타트업에 550만달러(약 72억원) 이상 시드 투자(기업 설립 후 첫 투자)한 사례는 각각 50여 곳에 달했다. 인도(25곳), 싱가포르(22곳)의 신생 스타트업도 대거 글로벌 투자자들의 낙점을 받았다. 반면 한국의 스타트업이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대규모 시드 투자를 받은 사례는 베트남 등과 더불어 3곳에 그쳤다.

여전히 뜨거운 블록체인 투자 열기

3일 글로벌 벤처투자 정보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일까지 시드 투자금액 기준 상위 20개사 가운데 블록체인·대체불가능토큰(NFT) 기술기업은 7곳, 헬스케어는 5곳, 반도체 기업과 핀테크는 각각 2곳으로 집계됐다.

시드 투자 상위 3개사는 모두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차지했다. 인기 NFT인 BAYC(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 제작사 유가랩스는 4억5000만달러(약 5900억원) 규모 시드 투자를 유치하면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설립된 후 투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자마자 몸값을 40억달러(약 5조2500억원)로 평가받으며 단숨에 유니콘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의 자회사 바이낸스US와 메타 출신 창업가들이 세운 블록체인 스타트업 앱토스는 각각 2억달러(약 2500억원)를 조달했다.

암호화폐 투자시장은 급랭했음에도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가 이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우선 메타버스 등이 급성장하면서 연관 산업인 블록체인 기술도 결국 뜰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서다. 또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블록체인 스타트업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코인베이스 산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코인베이스벤처스는 올 상반기 19개 사의 시드 투자에 참여했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구글벤처스와 함께 올해 상반기 CVC 투자 건수 1위다.

올해 블록체인 다음으로 큰돈이 몰린 분야는 헬스케어와 바이오테크다. 노스웰헬스와 에이기스벤처스가 만든 의료용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어서튼은 1억달러 규모 시드 투자를 유치해 주목받았다. 미국 바이오제약 기업 애로헤드가 중국 비보캐피털과 공동으로 설립한 리보핵산 간섭(RNAi) 치료제 기업 비시르나도 60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아시아 신생 스타트업에 쏟아진 관심

지역별로는 미국, 이스라엘, 중국 등 창업 강국에서 생겨난 스타트업들에 글로벌 자금이 몰렸다. 올 들어 전 세계에서 550만달러 이상 시드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954곳이었다. 미국이 388개 사로 가장 많았고 유럽에선 196개 사, 아시아에선 185개 사가 투자받았다. 아시아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50개국으로 가장 많았고 인도(25곳), 싱가포르(22곳), 인도네시아(7곳), 한국·베트남(각각 3곳) 순이었다. 일본은 올해 550만달러 이상 투자받은 신생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중국은 올해 전 세계 시드 투자금액 상위 10위권에도 반도체 제조업체 허지엔과 중앙처리장치(CPU) 개발회사 HJ마이크로(항저우홍준) 등 스타트업 두 곳이 이름을 올렸다. 싱가포르에선 안경업체 네소가 8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인도 안경 체인 렌즈카트가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D2C(소비자에게 직접 판매) 안경 브랜드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중에선 게임 스타트업 111퍼센트의 자회사 슈퍼센트와 데이터처리장치(DPU) 개발사 망고부스트, 빗썸의 메타버스 부문 자회사 빗썸메타 등이 550만달러 투자 유치 클럽에 가입했다.

삼성전자, 해외 스타트업 공격 투자

국내 벤처캐피털(VC)과 대기업 계열 CVC들의 해외 신생 기업 발굴은 올해도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미국 CVC인 삼성넥스트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삼성넥스트는 해외 시장에서 스타트업 6곳의 시드 투자에 참여했다. 지난달 말엔 웹3.0 스타트업 스페이스앤드타임이 진행한 1000만달러(약 130억원) 규모 시드 라운드에 참여했다. 이 회사는 암호화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이스라엘 게임 스타트업 쿠플리의 1800만달러(약 230억원) 규모 투자 라운드에도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 미국 데이터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 엔소, 블록체인 스타트업 머신파이랩, 이스라엘 개발자 대상 교육 플랫폼 윌코,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사가에도 투자했다.

국내 VC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미국 헬스케어 스타트업 이어러블의 660만달러(약 85억원) 시드 라운드에 참여했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는 미국 인공현실 스타트업 ‘TWO’가 진행한 2000만달러(약 260억원) 시드 라운드에 참여했다. 또 현대자동차 제로원과 롯데그룹의 CVC 롯데벤처스, 위벤처스 등은 메타 출신인 최정서 대표와 구글 출신인 배수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미국에 설립한 스타트업 바비디에 투자했다.

김종우/허란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