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만으로는 너무 좁다!’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 상당수는 해외 시장을 마음에 둔다. 스타트업 지원 단체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해 창업자를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0% 이상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진출 희망 지역 미국(39.0%), 동남아시아(25.6), 일본(9.1%), 중국(7.9%) 등의 순이었다.

2010년 초 스마트폰 보급으로 해외 진출이 이전보다 수월해지긴 했다. 현지에 사무실을 두거나 영업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세계 각국의 소비자와 만날 수 있게 됐다.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앱 장터에 앱을 올리는 순간 해외 진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모바일 게임사나 영상 메신저 '아자르'를 운영하는 하이퍼커넥트 등이 이런 방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소비자를 모아야 사업이 가능한 플랫폼 분야에서는 앱만 출시한다고 해외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많은 이용자를 유인해야 하고 필요하면 현지에서 영업 활동을 해야 한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국내 시장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해외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있다. 이들의 고군분투를 소개한다.
해외 4개국 동시 공략하는 당근마켓
당근마켓 직원들이 지난 3월 18일 영국 런던의 한 대형마트 앞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당근마켓 앱을 알리고 있다. 사흘간 마케팅 활동으로 1000명 이상이 당근마켓에 가입했다. /당근마켓 제공
당근마켓 직원들이 지난 3월 18일 영국 런던의 한 대형마트 앞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당근마켓 앱을 알리고 있다. 사흘간 마케팅 활동으로 1000명 이상이 당근마켓에 가입했다. /당근마켓 제공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당근마켓은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2019년 11월 KARROT(캐롯)'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시장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국내 월 이용자 수(MAU)가 500만명 정도 넘는 시기였다. 중고나라 등 국내 경쟁업체를 모두 따돌렸다고 보기 힘든 때였다. 현재 당근마켓은 이달 MAU 1800만명을 달성하며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근마켓의 해외 진출 전략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국내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국에 이어 캐나다(2020년 9월), 미국(2020년 10월), 일본(2021년 2월) 등 4개 국가를 동시에 공략했다. 보통 해외 진출 기업들은 첫번째 해외 진출 국가에서 성과가 나오면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법을 택한다.
해외서 어디까지 해봤니?…당근·블라인드·강남언니 고군분투기 [긱스]
당근마켓은 하이퍼로컬(지역밀착) 서비스 특성 때문에 다양한 지역에 빨리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하이퍼로컬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국민 정서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국내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해외 서비스 출시 시기가 빨랐다는 설명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여러 국가에 동시에 진출해 다양한 성공 방식을 찾아내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시간을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영미권 이용자들은 중고거래 판매 게시글에 필수 요소를 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근마켓은 필수 정보를 쉽게 쓰도록 기본 게시글의 포맷을 변경했다. 이 방법은 국내 서비스에도 적용했다.

영국 브리스톨 지역 서비스 출시 초기에는 일명 '맘 체험단'(한인+비한인)을 모집했다. 아이를 키우는 사용자들로 구성된 체험단이 올리는 중고물품은 상태가 좋아서 당근마켓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부모 이용자 대상으로 체험단을 운영해 이용자 확대에 성공했다.
당근마켓은 일본에서도 다양한 공간에서 당근마켓을 알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캐릭터 '당근이'를 앞세워 친근하게 소비자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당근마켓 제공
당근마켓은 일본에서도 다양한 공간에서 당근마켓을 알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캐릭터 '당근이'를 앞세워 친근하게 소비자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당근마켓 제공
국가마다 동네에 대한 개념도 다르기 때문에 당근마켓 서비스도 지역마다 특성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거래 가능 범위다.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과 일본의 주요 도시에서는 반경 4~6㎞ 정도면 하이퍼로컬 서비스를 구현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인구 밀도가 낮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동네 범위가 반경 10~20㎞까지 넓어진다.

나라별 이용자의 특성도 고려했다. 상당수 일본인은 개인 정보 공개를 꺼린다. 그래서 집 앞보다는 지하철역, 편의점 등 공공장소에서 거래를 선호한다. 이런 이유로 당근마켓은 일본에서는 거래 희망 지역을 표기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당근마켓은 캐릭터 사용이 친숙한 일본에서는 캐릭터 ‘당근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반면 북미 국가에서는당근이 캐릭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해당 지역 소비자의 선호를 고려해 서비스 사용자환경(UI)을 기본 게시판 형태로 매우 간단하게 구현했다

저돌적인 한국식 마케팅으로 성공한 블라인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도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미국 샌프란시코에 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면 해당 기업들의 지사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팀블라인드는 우선 블라인드 핵심 이용자 확보에 나섰다. 생계가 걸린 회사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쉽지 않다. 이용자가 서비스의 익명성을 믿어야 한다. 팀블라인드는 정말 '맨땅'에서 시작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확실한 타깃을 노렸다.
돼지김치찜을 직접 만든 김성겸 팀블라인드 공동창업자. 팀블라인드는 2015년 블라인드를 미국에서 알리기 위해 아마존 직원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빌려 한국계 아마존 직원 대상으로 돼지김치찜 파티를 열었다. 팀블라인드 제공
돼지김치찜을 직접 만든 김성겸 팀블라인드 공동창업자. 팀블라인드는 2015년 블라인드를 미국에서 알리기 위해 아마존 직원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빌려 한국계 아마존 직원 대상으로 돼지김치찜 파티를 열었다. 팀블라인드 제공
팀블라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김성겸 이사는 2015년 6월 돼지김치찜 파티를 열었다. 장소는 아마존 직원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택했다. 아마존의 한국계 직원과 같이 밥먹고 이야기하면서 블라인드를 알렸다. 당시 아파트 대여비는 회사 예산으로 보면 상당히 비쌌지만 팀브라인드는 마케팅비용으로 생각했다. 팀브라인드 관계자는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미국에서는 아마존의 직원들이 사용하는 IT 서비스가 업계에 쉽게 확산하는 점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다음 타킷은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다른 방법도 활용했다. 이번에도 한국적인 방법을 택했다. MS 주차장에서 서비스 설명이 적힌 '찌라시'를 직원들에게 돌리고 여기저기 붙였다. 팀브라인드 직원들은 찌라시를 돌리다가 발견한 MS의 1호 가입자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가입자는 바로 늘기 시작했다. 당시 MS 직원 게시판에는 ‘어떤 미친 X들이 회사 주차장에 이런 걸 뿌렸는데 보러 왔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팀블라인드는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MS) 주차장에 블라인드 소개 포스터를 여기저기 붙였다. 당시 MS 직원 게시판에는 ‘어떤 미친 X들이 회사 주차장에 이런 걸 뿌렸는데 보러 왔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팀블라인드 제공
팀블라인드는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MS) 주차장에 블라인드 소개 포스터를 여기저기 붙였다. 당시 MS 직원 게시판에는 ‘어떤 미친 X들이 회사 주차장에 이런 걸 뿌렸는데 보러 왔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팀블라인드 제공
운도 따랐다. 당시 MS에는 블라인드와 비슷한 ‘포럼’이라는 사내 서비스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로 경쟁사인 아마존과 MS 직원들은 상대 회사의 처우나 내부 사정이 항상 궁금했다. 블라인드를 써본 MS 직원들이 '블라인드에서는 아마존 직원과 대화도 가능하다'고 '포럼'에 글을 올렸다. 이걸 계기로 포럼을 쓰던 MS 직원들 대부분 블라인드로 넘어갔다.

현재 블라인드는 미국에서 직장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링크드인' 다음으로 화이트컬러 직장인 가입자가 많다. 미국 MS 직원 90%, 아마존은 70%가 가입할 정도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면 다른 국가 진출도 수월하다는 전략도 적중했다. 미국 다음으로 인도,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순으로 이용량이 많다. 최근에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블라인드 올해 하루 평균 가입자수는 작년보다 200% 이상 늘었다.
현지업체 인수해 일본 시장 진출한 강남언니
미용 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는 일본 진출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강남언니 앱 가입자 350만명 정도로 10% 이상은 일본인 가입자다. 일본인 가입자는 처음에는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였다. 2019년 11월 강남언니는 한국 병원을 찾는 일본 사용자를 위한 크로스보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전부터 한국 성형외과를 방문하려는 일본인들은 강남언니 앱을 번역해서 사용했다. 관련 수치를 보고 힐링페이퍼는 크로스보더 서비스의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크로스보더 서비스 출시 3개월 동안 강남언니를 통한 병원 상담신청 건 수가 매월 150% 상승했다.
일본의 강남언니 앱
일본의 강남언니 앱
힐링페이퍼는 일본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로 했다. 일본 병원의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2018년 미용의료 정보 서비스인 '루쿠모'를 인수했다. 당시 일본 성형외과, 피부과 등에서 현지 사용자가 경험한 10만 건 이상의 시술 후기를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일본에서 강남언니 서비스명은 ‘간나무온니'다. 한국어를 그대로 일본어 방식으로 옮겼다.

2019년 하반기 설립된 일본 법인에는 현지 뷰티커머스 출신 인력을 중심으로 12명의 일본인 직원이 근무 중이다. 강남언니 일본 서비스의 입점 병원 수는 650여곳까지 늘었다.

알란 카토 힐링페이퍼 일본법인 대표는 "일본에서도 의료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한 소비자의 정보 투명화 수요가 많다"며 "강남언니가 글로벌 미용의료 플랫폼의 선두주자가 되고 미용의료 서비스 시장 발전에 더욱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참 한가지 더

해외에서도 이용자의 다양한 사례가 쌓인 당근마켓과 블라인드

당근마켓과 블라인드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흥미로운 이용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뉴스가 종종 나온다. 블라인드의 경우에는 대한항공의 일명 '땅콩회항' 사건을 외부에 알리기도 했다.

영국 런런에서도 당근마켓으로 급한 구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가 있었다. 런던의 한 이용자는 보모를 긴급하게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근마켓으로 알게 된 다른 이용자를 통해 보모를 구할 수 있었다. 이후 두 이용자는 한 보모에게 아이들을 맡기며 같이 커피도 마시는 동네 친구가 됐다.

일본에서도 어린 아이 용품 거래가 많다. 중고거래를 하다보면 이웃의 자녀 나이도 예측 가능하다. 일본 당근마켓을 통해 자녀 나이가 비슷한 이웃끼리 친분을 쌓으며 필요한 제품을 서로 나누고, 육아 팁도 공유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나중에 본인이 판매한 옷을 예쁘게 입고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후기도 있었다.

미국 블라인드에서도 회사의 불합리한 경영 방식을 직원이 폭로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배달앱 1위 사업자인 '도어대시'가 모든 직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음식 배달하라는 업무 지시를 내려싸는 글이 블라인드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해당 글을 올린 직원은 자신이 계약한 직무 설명서에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해당 게시글로 도어대시의 재직자 가입자 증가했다.
작년 12월 블라인드에 직접 해명글을 올린 베터닷컴의 최고경영자(CEO) 비샬 가르그. 링크드인 캡쳐
작년 12월 블라인드에 직접 해명글을 올린 베터닷컴의 최고경영자(CEO) 비샬 가르그. 링크드인 캡쳐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온라인 모기지 전문기업 베터닷컴의 최고경영자(CEO) 비샬 가르그가 블라인드에 올린 글도 논란이 됐다. 앞서 그는 화상회의에서 직원 900여명을 한번에 해고해 비난을 받았다. 그는 화상회의에서 “당신이 현재 이 내용을 듣고 있다면 당신이 해고된 인원 가운데 하나임을 뜻한다”며 “이 시점부터 회사와 맺은 모든 계약이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화상회의 이후 블라인드에 “해고된 인원 중 250명은 하루 평균 2시간씩만 일을 하면서 8시간 치의 급여를 받아갔다”며 "회사, 고객, 동료로부터 도둑질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사실을 모르면서 회사를 비난할 거면 공부라도 해라”라고 덧붙였다. 역시 이 사건으로 베터닷컴 직원 가입자가 급증했다.

김주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