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원의 사이언스 톡(talk)] "희귀질환 고치려다 백혈병 생겨" 블루버드바이오 임상 3상 중단
미국의 바이오텍 블루버드바이오의 희귀신경계질환 유전자 치료제 '엘리셀(ELI-CELL)'의 임상 3상이 11일(현지시간) 중단됐다. 치료제를 투여한 환자 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사례가 발생해서다.

중단된 약물은 '부신백질이영양증(CALD)'의 유전자 치료제다. CALD는 5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성염색체의 ALD 유전자 이상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셀은 변형된 렌티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정상적인 ALD 유전자를 체내에 삽입하는 방식의 유전자 치료제다.

회사는 이번 부작용의 원인으로 렌티 바이러스를 지목했다.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할 경우 표적 유전자가 아닌 다른 유전자를 잘못 활성화시키는 사례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0년대 초 '중증복합면역결핍증(X-SCID)'의 유전자 치료제 임상 시험 중 3명의 참여자가 백혈병에 걸렸다. 임상 시험을 승인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유전자를 전달한 레트로 바이러스에 대한 모든 임상 중단을 결정했다. 이후 제약사들은 렌티 바이러스를 포함해 다른 종류의 전달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블루버드바이오가 사용한 렌티 바이러스는 비교적 안전한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 역시 부작용 우려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2019년 발표됐다. 국제학술지 '몰리큘러 테라피'에는 렌티 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를 실험하던 중 원숭이 한 마리가 백혈병과 유사한 질병에 걸렸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올해 2월 블루버드바이오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인 겸상적혈구병 치료제 임상 시험에서도 백혈병에 걸린 참여자가 발생했다. 이후 회사는 조사 결과 렌티 바이러스가 백혈병을 유발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밝히며 임상을 재개했다.

회사 측은 이번 이상 반응 사례가 겸상적혈구병, 베타 지중해빈혈증 등 다른 파이프라인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필립 그레고리 블루버드바이오 최고과학책임자는 “이번에 사용한 렌티 바이러스는 이전에 사용한 바이러스를 일부 개조한 것”이라며 “이 변형으로 인해 여러 혈액 세포의 유전자 발현이 유도되며 암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임상 중단으로 CALD 환자들의 치료는 더 요원해졌다. 현재 ALD의 치료는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은 있지만, 원인을 해결하는 치료제는 전무하다. 일부 환자들이 증상 완화를 위해 ‘로렌조 오일’을 복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식 의약품은 아니다.

로렌조 오일은 1984년 ALD로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아우구스토 오도네, 미카엘라 오도네 부부가 개발한 것으로 임상적으로 효능이 입증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의약품이 아닌 식품으로 분류돼 있어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 한 달에 150만 원이나 하는 약값 때문에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레고리 최고과학책임자는 “엘리셀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며 “더 안전하고 나은 바이러스 벡터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