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섭의 헬스케어 돋보기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은 지난해 기록적인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날 혁신이 단번에 진행되면서 기술, 산업, 규제를 막론하고 전례없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 글로벌 헬스케어산업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작년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에는 사상 최대인 140억달러의 투자가 집행됐다. 1억달러가 넘는 ‘메가 딜’도 40여 건에 달했다. 작년 미국에서 새로 등장한 ‘유니콘’ 스타트업 15개 중 8개가 디지털 헬스케어 업종이었다.

이런 폭발적 성장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역설적 촉매제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중이 한번 경험한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제 ‘필요한 때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잡게 됐다.

미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신기한 것’ 정도였지만 이제는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 신기술 박람회뿐만 아니라 언론 및 주식 시장에서도 일상적으로 거론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없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다른 만큼 단순 비교하면 안 된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도 상대적으로 잘 대응했기 때문에 미국에 비해 변화의 동인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 시스템, 환경, 이해관계 등을 떠나 결과만 놓고 보면, 해외는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공회전만 반복하는 중이다.

필자는 이제 토론회 및 공청회에 초청받아도 잘 참석하지 않는다. 어차피 국회의원들은 사진만 찍고 사라지며, 토론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수년째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근본적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사회적 합의는 때가 되면 저절로 이뤄지는 것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정말 우리 사회가 혁신 성장을 원하고, 4차 산업혁명이 대선 때만 나오는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변화할 수 없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우리가 만약 현상 유지에 만족한다면 이대로 머물러도 괜찮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변화를 원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합의 도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미국 보험청은 혁신적 의료기술은 식품의약국(FDA) 허가만 받으면 무조건 4년 동안 국영 의료보험 메디케어의 급여를 제공하겠다는 파격적 안을 내놓았다. 이 안이 실현되면 미국의 혁신 의료기술 개발과 산업 성장에 박차가 가해질 것이다. 혁신을 장려하려면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른 이런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에도 혁신의료기기 제도는 있으나, 건강보험과 연동되지 않은 탓에 산업적 파급효과는 사실상 전무하다. 오히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받은 인공지능(AI) 기술이 50개가 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수적인 보험 적용을 충족하는 게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우리는 정말 혁신성장, 4차 산업혁명, AI, 유니콘 스타트업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정책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공회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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