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촉각·재생능력 활용법 연구…미래 식량자원 확보의 출발점"
동물은 주변 환경에 민감하다. 위험을 피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을 개발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촉각과 통각은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는 중요한 자극이다. 하지만 식물은 어떤가.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은 주변 자극에 굉장히 둔감해 보인다. 대부분 식물은 손으로 건드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상처를 내도 그저 당하고 있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촉각이나 통각이 없을까.

식물도 아픔을 느낀다

파리지옥과 미모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둘은 촉각에 굉장히 민감한 식물이다. 파리지옥은 트랩이라 불리는 잎의 안쪽에 있는 작은 털을 만지면 매우 빠르게 안쪽의 생물을 가두려고 한다. 미모사도 물리적 자극이 가해지는 즉시 잎을 오므리고 줄기를 아래로 내려 자극을 피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은 줄기가 단단한 막대를 만나면 천천히 막대를 휘감아 스스로를 지탱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파리지옥과 미모사는 어떻게 자기가 만져지는 것을 알까. 덩굴식물은 단단한 막대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만져도 움직이지 않는 대부분의 식물은 이들과 어떻게 다를까.

답은 식물의 전기신호에 있다. 식물은 신경계가 없기 때문에 동물처럼 빠르게 전기신호를 전달하지 못한다. 대신 물리적인 자극을 받으면 빠르게 전기신호를 발생시킨다. 식물을 만지지 않고 전기만 흘려보내도 만진 것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거의 모든 식물이 물리적 자극을 인식한다. 식물을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는 즉시 식물 세포 속 칼슘 이온(Ca2+)의 농도가 높아진다. 높아진 칼슘 이온은 세포 내에서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신호 역할을 하며 주변 세포에 신호를 전달해 칼슘 이온의 연쇄적인 농도 변화를 일으킨다. 칼슘 이온은 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기적인 성질이 있다.

식물의 촉각을 이용하는 법

식물의 촉각을 인간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식물의 촉각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식물이 물리적 자극을 받을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식물에 지속적으로 물리적 자극을 가하면 식물은 주변 환경이 혹독하다고 느낀다. 대부분 식물에 물리적 자극은 바람과 같다. 즉 지속적인 물리적 자극은 식물이 현재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느끼게 한다. 따라서 식물은 바람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너무 길쭉하게 성장하면 바람 때문에 쉽게 쓰러질 수 있으므로 지상부의 성장을 억제한다. 대신 지하부를 강화하거나 내부를 단단하게 해 바람에 대응한다. 바람은 수분 부족도 유발할 수 있어 안토시아닌과 같은 색소를 합성해 항산화 기능을 보강한다. 즉 물리적 자극을 통해 식물의 성장 정도와 내부 영양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식물은 상처를 받으면 주변에서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물은 상처에 민감하며 상처를 받는 즉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신호를 모든 부위에 전달한다. 해충이 소화하지 못하거나 해충이 싫어하는 물질을 합성하거나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는 냄새를 만들어 공기 중으로 확산시켜 간접적으로 해충을 제거하기도 한다. 따라서 식물이 상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면 식물의 해충 저항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식물의 경이로운 재생 능력도 주목할 만하다. 식물은 상처를 받으면 상처 부위에서 식물 전체를 재생시킬 수 있다. 작은 잎을 잘랐을 때 생기는 잎의 단면에서 식물의 잎, 줄기, 뿌리까지 재생돼 새로운 복제식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식물 재분화’라고 한다. 식물 재분화를 활용하면 복제 식물을 많이 만들 수 있다. 훌륭한 개체의 식물을 교배해 얻은 뒤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대량 생산할 수 있어 산업적으로 유용한 기술이다.

식물 기초연구의 미래

"식물의 촉각·재생능력 활용법 연구…미래 식량자원 확보의 출발점"
식물은 인류의 가장 기초적인 식량 자원이다. 그러나 동물에 비해 식물 기초연구는 다소 더뎠다. 세계 기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존 식물이 서식하기 적절하지 않은 환경으로 바뀌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스마트팜처럼 폐쇄된 환경에서 식물을 재배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식물 기초연구는 다양한 식물을 더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재배할 수 있게 하는 주춧돌이다.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식물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지만 이는 전통적인 식물 재배 방식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류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를 거듭한 식물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주변의 식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미래 식물 기술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