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으로 성공해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쉬엄쉬엄 즐기며 여유를 누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만, 국내 스타트업 업계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재창업에 뛰어드는가 하면 갓 창업한 다른 벤처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창업가를 흔히 볼 수 있다. ‘선배’가 ‘후배’를 돕듯 나름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회사 베이스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한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왼쪽)과 신현성 티몬 의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스타트업 투자회사 베이스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한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왼쪽)과 신현성 티몬 의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현성 티몬 의장과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도 마찬가지 사례다. 신 의장은 온라인 쇼핑몰 티켓몬스터를 창업한 데 이어 40여개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강 전 부사장은 네이버와 카카오의 초기 멤버 출신으로 플랜트리파트너스라는 투자회사를 설립, 참신한 벤처기업을 발굴해 왔다.

두 사람은 최근 초기 스타트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베이스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밴드에서 리드보컬을 돋보이게 하는 베이스기타처럼, 스타트업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창업벤처전문 사모펀드(PEF)를 설립해 총 286억원의 투자금 모집을 마쳤다. 개인과 기업이 출자한 100% 민간자본으로 조성된 점이 특징이다. 신 의장과 강 전 부사장 외에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차남인 홍정인 휘닉스호텔&리조트 실장, 주환수 전 카카오톡 서비스 총괄, 김승현 전 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심사역, 신윤호 전 대교인베스트먼트 심사역이 파트너와 심사역으로 참여했다.

베이스인베스트먼트는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앞둔 프리(pre) 시리즈A 단계 기업에 주로 투자한다. 단순히 자금만 대는 게 아니라 사업전략 수립, 인력 구성, 서비스 개선 등 경영 전반에 도움을 준다는 목표다. 지난 8일 서울 위워크 강남역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각자 개인적으로 투자하다 베이스인베스트먼트를 따로 설립한 이유는.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강준열=개인 자격으론 투자 대상 스타트업에 충분한 규모의 돈을 대기 쉽지 않았다. 벤처캐피털(VC)을 설득해 돈을 모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끝내 동의를 받지 못할 때도 있다. 규모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신 의장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 신 의장이 초기 투자의 핵심으로 강조하는 게 ‘정말 잘 될 팀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려 한다.

▷신현성=벤처투자회사가 많지만 초기 스타트업을 돕는 곳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1년에 10만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VC 업계가 인맥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투자처 발굴이 대부분 지인 소개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숨은 고수를 찾아내는 방식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100% 민간자본으로 운영하면 장·단점이 무엇인가.

▷강준열=정부가 벤처 활성화를 위해 재원을 투자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국가가 지원한 펀드와 민간이 조성한 펀드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 한국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야 한다. 국내에서 해외로 진출하는 벤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해외에 투자한 경험을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가가 재원을 댄 펀드로 해외 투자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국내 투자에 집중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

▷신현성=정부 과제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창업자를 돕기 위해 투자한다는 철학과 상충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돕고 싶은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뜻에서 민간 펀드로 조성했다.

▶해외 투자 계획은 어떻게 잡고 있나.

▷강준열=20% 정도 해외에 투자할 계획이다. 우선 한국과 환경이 비슷한 이스라엘의 초기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려 한다. 인공지능(AI)이나 로보틱스 같은 차세대 기술 연구가 활발한 지역인데 한국 투자자들이 비교적 잘 접근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차츰 미국 등 다른 국가로 투자 범위를 넓혀갈 생각이다.

▶회사의 핵심인 두 사람이 현장 경험을 갖췄다는 게 강점일 것 같다.

▷신현성=초기 스타트업은 자금 이외에도 성장을 위한 조언과 조력이 절실한 단계다. 투자자가 ‘이렇게 이렇게 해보라’고 조언하면 현업에선 잘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 파트너와 심사역들은 현장에서 뛰어본 경험을 활용해 실질적인 전략이나 방향성 수립을 돕는 데 집중할 것이다.

▷강준열=VC 심사역들이 여러 이유로 이직이 많은데, 대부분 투자회사의 인센티브 구조를 보면 다른 사람이 맡던 회사를 이어받았을 때 인센티브가 없다.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이 VC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는 단점이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얻은 경험이 나만의 자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스타트업들과 열심히 나눠 더 크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많은 스타트업을 접하다 보면 ‘잘 되는 곳’ ‘안 되는 곳’의 특징이 보이지 않나.

▷신현성=잘 되는 곳의 특징은 모르겠지만… 안 되는 곳은 그래도 좀 명확한 것 같다. 초기 스타트업은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잘난 사람이어도 평판이 좋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았다. 같이 협업했던 사람들이 ‘이 사람과 다시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리더로서 신뢰할 수 있겠나. 또 돈을 불필요하게 많이 쓰면서 빨리 버닝(자금이나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회사도 피하게 된다. 초기 스타트업은 가능한 가볍게 가야 한다.

▷강준열=딱 정해진 성공의 방정식은 없다. 다만 주사위를 잘 던지는 것보다 많이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 신중하게 한 번 주사위를 던지기보다 빨리빨리 던지면서 다양한 결과를 관찰해야 한다. 또 ‘우리 제품이 잘 안 되는 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돈을 써서 알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팀 중에 성과내는 곳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상품이 고객의 고충을 해결해준다는 게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케팅에 지나치게 투자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신현성 티몬 의장(왼쪽)과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현성 티몬 의장(왼쪽)과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티몬·네이버·카카오 등의 초창기와 비교하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좋아지고 있나.

▷신현성=많이 발전한 것 같다. 일단 돈 구하기가 수월해졌다. 회사를 설립하고, 엔젤 투자 받고, 시리즈A 가는 단계까지는 훨씬 쉬워졌다. 티몬을 시작할 때는 참고할 만한 글도 별로 없고 마땅한 VC를 찾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회사를 어떻게 만들고, 팀은 어떻게 꾸리고, 린 스타트업을 어떻게 짜야하는지에 대한 글이 엄청나게 많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스라엘 등과 달리 한국 스타트업은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국내에 머무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이 진짜 아시아의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더 발전이 필요하다.

▷강준열=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 스타트업이 만들어내는 성과, 스타트업이 창출하는 가치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1970~1980년대의 경제·사회 시스템이 지금의 산업 기틀을 다졌지만 더 이상 경쟁력이 있는지는 의문 아닌가. 간혹 ‘이제 나올 만한 것 다 나왔다’는 비관론을 펴는 분들도 있는데 창업자들을 계속 만나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당장 성과가 보이진 않아도 분명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고 있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을까.

▷강준열=단기적으론 어렵다. 10년 이상 역량과 경험을 축적해야 가능한 일이다. 네이버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라인’을 생각해 보자. 네이버는 일본 시장을 2003년부터 공략했다. 맨 처음 검색으로 진출했다가 실패했고, 한게임으로 수익모델을 만들었고, 다시 검색 서비스 내놨다가 또 안 됐다. 그래도 라이브도어 같은 현지 회사를 인수해 꾸준한 투자를 이어갔고, 라인은 일본인들이 보기에 ‘일본 회사가 만든 제품’이라 믿어의심치 않을 정도로 현지화된 수준에 이르렀다. ‘블라인드’도 미국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로 나간 사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고, 경험을 계속 축적하면 성과가 나오리라 본다.

신현성 티몬 의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현성 티몬 의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현성=사실 국내에서 잘 된 서비스는 그 업체가 아니었어도 다른 누군가가 또 잘 했을 수 있다. 한국에서 땅따먹기에 그치지 않고 얼른 다른 나라로 뻗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향후 베이스인베스트먼트의 계획은.

▷신현성=회사를 키우고 싶다. 단순히 투자 규모를 늘리는 게 아니라 여러 단계와 여러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가 되면 좋겠다. 미국의 스타트업 투자회사를 보면 부러운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잘나가는 회사를 끝까지 따라가며 챙긴다. 우버의 1호 투자자가 최근 펀딩까지 참여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국내 VC와 달리 투자와 관련 없는 조직이 크다는 점이다. 포트폴리오에 담은 회사의 고충을 풀어주고, 네트워크를 쌓게 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타이거 같은 펀드는 뛰어난 심사역이 있으면 그 사람의 펀드를 만들어주고 계속 스핀오프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활성화하면 투자회사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이 회사는 이미 복수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를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VC 업계에서는 아직 생소한 ‘데이터 기반 투자’를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신규 법인 등록현황이나 홈페이지 등에 실린 정보를 크롤링(끌어오기) 방식으로 수집, 사업 관련 지표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고 투자 결정에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베이스인베스트먼트가 조성한 펀드에는 카카오 2대 주주인 케이큐브홀딩스와 네이버, 컴투스 등 유명 IT기업도 투자금을 댔다. 두 사람은 “성공한 1세대 스타트업이 후배 스타트업 육성에 나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창업자들의 다양한 고민을 함께 하며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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