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는 국내 이공계 분야 핵심 인력의 산실로 통한다. 서울대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은 한국 산업발전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런 서울대 공대가 신음하고 있다. 우수 학생들이 입학을 꺼리고 졸업생들은 다른 길로 빠지고 있다. 산업계에서도 서울대 공대 출신들을 대하는 눈길이 예전과 같지 못하다. 서울대 공대의 위기는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다. 서울대 공대가 흔들려서는 이공계 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교육만이 아니다. 산업계 인력 수급에도 균형이 깨진다.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이공계 살리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서울대 공대 문제를 집중 파헤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대 공대를 살리기 위해 서울대 공대 문제의 핵심을 찾아나선 것이다. 원인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고는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공대 위기의 원인 분석을 통해 얻은 결론은 간단하다. 지금이 바로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고 어느 정도로 이뤄져야 할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학부 폐지론'까지도 내걸고 있다. 또다른 일부에서는 국내 교육계 현실에서 학부 교육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대 공대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경제신문은 서울대 공대의 '창조적 파괴'를 위해 다섯가지를 긴급 제안한다. ◆ 교육 중심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연구 중심으로 갈 것인가 =미국의 공과대학들은 목표가 분명하다. 스탠퍼드대는 '활용성'에 목표를 두고 산업체 등에 진출할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미시간공대도 현장 엔지니어 배출에 교육 목표를 두고 있다. 반면 캘리포니아공대는 '창의성'에 목표를 두고 학자와 연구자를 배출하는데 집중한다. 서울대 공대는 어떤가. 대학원 중심 대학을 표방한 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교육 위주냐 연구 중심이냐의 양갈래 길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다. 재료공학부의 경우를 보자. 학부생이 6백84명에 달한다. 대학원생도 6백59명이다. 이에 반해 교수는 불과 38명. 이같은 매머드급 학생수로는 수월한 교육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학부를 줄이든지 대학원을 줄이든지 선택해야 한다. ◆ 산업계 니즈(Needs)를 읽어라 =서울대 공대에 대한 산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흐름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글로벌 경영을 목표로 한참 앞서가고 있는데 서울대 공대는 그 속도에서 뒤진다"(서울대 공대 출신 대기업 사장)는 얘기다. 특히 기술의 변화속도가 빠른 IT(정보기술)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훨씬 뒤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계는 따라서 "서울대 공대의 모든 학부 교과목을 산업 현장의 기술변화 트렌드를 반영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글로벌화해야 한다 =서울대 공대는 세계적인 대학들과 어깨를 겨뤄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구성원의 경쟁력은 물론 모든 시스템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교수 채용에 있어 국적과 학맥을 불문하고 최고 교수진을 유치, 양성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번 교수로 채용되면 평생이 보장되는 시스템(교수정년제)도 개혁해야 한다. 선진 대학에서 일반화된 엄정한 교수평가제를 도입해 연구하지 않는 교수는 과감히 도태시켜야 한다. 동시에 연구성과가 뛰어난 교수에게는 과감한 보상을 주는 인센티브제도 마련해야 한다. 효율성이 무시된 관료주의도 벗어던져야 한다. 교수가 연구와 강의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부담에서 자유롭게 해야 한다. ◆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나아가라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서울대 공대로 온 한 교수는 "많은 학과들이 변화하는 세계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른바 '서울대 백화점'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서울대 공대가 자체 경쟁력을 가진 학과를 특성화해 최소한 세계 10위권에 드는 학과를 5개 이상은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경영구조를 바꿔라 =서울대 경영구조는 최고 수준의 학문 성과를 내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문제와 관련, 전문가들은 우선 "총장과 학장의 선출과 임명 절차를 맡을 독립 이사회 설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학생 선발 등을 대학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