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흔들린다(13) 정부시스템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요도시 절반, 코로나 확진자 정보 팩스로 제출
팩스 제출 없애려 IT 시스템 개발했지만 외면
보건소 직원이 밤샘입력..민간위탁에 30억원 쓰기도
시스템통합 대신 기존 시스템에 새 시스템 '덕지덕지'
백신관리 놓고 후생성·내각관방 별도 시스템 촌극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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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속의 99.247%에 인감을 찍는 절차를 폐지하겠다. 관공서가 팩스로 접수를 받는 대신 이메일로 정보를 모으도록 하겠다."

2020년 9~10월 고노 다로 당시 일본 행정개혁상이 발표한 '탈 인감·탈 팩스' 선언이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수를 팩스와 수작업 등 후진적인 방식으로 집계하는 실태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게 계기였다. 작년 9월에는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디지털 업무를 총괄하는 디지털청도 출범했다.

하지만 고노 행정개혁상의 탈인감·탈팩스 선언 2년이 다 돼도록 일본은 여전히 코로나19 현황 파악을 팩스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제6차 유행이 한창이었던 지난 1월31일 고베시 보건소에 팩스로 도착한 2100장의 확진자 발생 신고서.(사진 왼쪽) 병원들이 팩스로 보내온 코로나19 감염자 발생 신고서를 PC에 대신해서 입력하는 나고야시 직원들. 지난 16일 현재도 10명 이상이 매일 수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자료 : 요미우리신문)

코로나19 제6차 유행이 한창이었던 지난 1월31일 고베시 보건소에 팩스로 도착한 2100장의 확진자 발생 신고서.(사진 왼쪽) 병원들이 팩스로 보내온 코로나19 감염자 발생 신고서를 PC에 대신해서 입력하는 나고야시 직원들. 지난 16일 현재도 10명 이상이 매일 수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자료 : 요미우리신문)

◆IT시스템이 현장 부담 늘려
요미우리신문은 전국 20개 주요 도시와 도쿄23구 등 43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제5차 유행이 한창이었던 작년 8월16~22일과 제6차 유행으로 1일 확진자가 5만명을 넘은 지난 2월28~3월6일의 환자 발생 신고서 제출 상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환자 발생 신고서의 53%와 49%가 팩스로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즈오카시와 하마마쓰시는 약 95%가 팩스로 접수됐다. 고베시(85%), 구마모토시(73%) 등도 대부분의 감염자 현황을 팩스로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5월 일본 전역의 감염자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 '허시스(HER-SYS)'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시스템 개발 비용을 제외하고 시스템을 보완하는데만 3년간 58억엔(약 569억원)이 들었다. 의료진이 직접 허시스에 감염자 정보를 입력함으로써 팩스 집계를 없앤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스템 도입 2년이 지나도록 주요 도시의 병원 절반이 팩스에 의존하는 실태가 재확인된 것이다. 병원이 감염자 정보를 팩스로 보내면 보건소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허시스에 정보를 입력한다.

6차 유행이 한창이었던 1월말 고베시 보건소에는 매일 2100장의 팩스가 도착해 직원들이 자정까지 입력작업을 했다. 밀려드는 팩스를 감당하지 못한 오사카시는 3억4000만엔을 들여 민간에 허시스 입력을 위탁했다.

나고야시는 팩스 자료를 입력하는 전담팀을 꾸리는데 올해 1억4400만엔을 쓴다. 업무 효율화를 위해 도입한 디지털 시스템이 도리어 현장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다.

현장 의료진은 "허시스의 입력방법이 복잡해 손으로 쓰는 것보다 시간이 2배 이상 걸린다"고 하소연한다. 허시스가 ▲스마트폰으로 입력이 불가능함 ▲입력항목(약 40개)이 너무 많음 ▲접속이 몰리면 입력이 어려워짐 ▲병원 차트와 연동이 안됨 등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의료진이 허시스를 외면하자 도쿄도는 지난 1월부터 환자 정보 입력 1건당 1만엔의 협력금을 지급한다. 덕분에 도쿄도의 팩스 제출 비율이 46%에서 20%로 떨어지자 오사카부도 5월부터 초기비용 10만엔, 입력 1건당 3000엔의 지원금을 병원에 주기로 했다.
◆'마스크' 항목 없어 새 시스템 개발
허시스를 둘러싼 소동은 일본의 디지털 행정이 얼마나 후진적인 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허시스 이전에도 일본은 전염병 발생상황을 집계하는 '네시드(NESID)'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네시드는 병원으로부터 팩스로 받은 자료를 보건소 직원들이 입력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절차를 없애기 위해 개발한 시스템이 허시스지만 복잡한 입력방식 때문에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위기관리 시스템이 난립한 것도 신속한 대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후생노동성은 1995년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병원의 의료물자 부족을 파악할 수 있는 '광역재해구급의료정보시스템(EMIS)'을 만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자 'G-MIS'라는 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 기존의 EMIS에는 코로나19로 부족한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력하는 항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관리와 관련해서는 후생노동성이 2021년 2월 '백신접종원활화시스템(V-SYS)'을 개발한 두 달 뒤인 2021년 4월 내각관방이 '백신접종기록시스템(VRS)'을 따로 개발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V-SYS가 병원의 백신 재고와 접종횟수는 파악할 수 있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백신을 접종받았는지 알 수 있는 항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V-SYS를 보완한 VRS 역시 단말기 사용법이 어렵다는 이유로 의료현장과 지자체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왜 전염병 발생 상황과 백신 접종 기록을 한번에 관리하는 통합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부처마다 제각각의 시스템을 따로 만들었을까. 기존의 시스템을 보완하지 않고 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을까.

사카시타 데츠야 일본 정보경제사회추진협회 상무는 마이니치신문에 "각 부처가 필요할 때마다 한두가지 기능만 갖춘 시스템을 여러 정보기술(IT) 업체에 발주했기 때문"이라며 "시스템을 보완하느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편이 빠르고 싸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일본 정부의 디지털 체계는 기존 시스템에 새 시스템이 덕지덕지 추가된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같아졌다고 사카시타 상무는 지적했다.
◆日 관공서 99% 'IT 시스템 종신계약'
지난 2월8일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국 1800여개 행정기관과 지자체의 정보시스템 수주 현황을 조사한 결과 "99%가 IT업자 1곳과 장기 재계약을 맺고 있다"고 밝혔다. IT업자들이 시스템 유지·보수로 계속해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한번 수주하면 다른 회사는 접근하기 어려운 사양을 집어넣는 형태로 경쟁자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공서의 IT 전문지식이 부족한 점을 악용한 것이다.

회계검사원에 따르면 2018년 정부 부처가 발주한 정보시스템 가운데 입찰 참가자가 1곳 뿐인 사례가 74%였다.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려 했더니 기존 IT업체가 데이터 이전 비용으로만 5000만엔을 요구해 단념했다"는 지자체도 있었다.

일본 공정위는 정부 기관을 상대로 한 IT업체들의 영업방식이 "독점금지법상 경쟁사의 참가를 방해하는 '사적 독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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