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너지 육성·투자자 압박에
정유사, 시추투자 크게 줄어들어
美셰일기업 파산 겹쳐 공급능력↓

향후 10년 수요 줄지 않을 듯
수급불균형 지속땐 유가 급등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정유기업 투자자의 ‘친환경’ 행보가 오히려 유가를 끌어올리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태양광, 풍력 등을 육성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고, 투자자는 정유사에 기존 사업을 축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유사들이 원유 시추 등에 대한 투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지 못해 유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친환경 정책의 역설…유가 치솟았다

1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7월물은 장중 배럴당 71.78달러까지 뛰며 2년 반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WTI 가격은 올초 대비 50%가량 올랐다. 같은 날 브렌트유 8월물도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장중 배럴당 73.6달러를 넘겼다. 브렌트유 가격은 올해 초 배럴당 50달러 선이었다. 바이든 행정부와 투자자가 친환경을 외치는 와중에도 유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부족한 공급과 늘어나는 수요의 불일치로 유가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시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 드는 주요 근거는 세계 정유사들의 원유 시추 투자액 감소다. 영국 에너지산업 분석회사인 우드매켄지는 세계 원유 시추 등에 대한 투자액이 작년 3290억달러였는데 올해엔 3480억달러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2014년(8070억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드매켄지는 2024년까지 연간 투자액이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유사들이 원유 생산 확대를 위한 투자를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업계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달 알래스카 원유 시추를 중단시키는 등 친환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유사들을 향한 투자자의 압박도 강해졌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에 친환경 에너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투자자의 호응을 얻어 이사회 12석 중 3석을 차지했다. 취임 초기부터 원유 생산 능력 확대에 초점을 맞춰온 대런 우즈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의 전략에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 최대 은행인 JP모간의 크리스티안 말렉 애널리스트는 “원유 생산을 늘리기 위해 현재 예정된 투자액은 2030년까지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6000억달러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미 셰일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재정난에 처한 점도 유가 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원유 수요는 당분간 대폭 줄어들 것 같지 않다는 예상이 이어지고 있다. 원유를 대체할 에너지가 아직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며 사람들의 이동이 늘어나자 항공유, 내연기관차용 휘발유와 경유 수요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아직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WSJ는 차량용 연료 및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앞으로 10년 이상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원유 수요가 내년 말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적어도 2026년까지는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원자재 투자회사 G&R어소시에이츠의 리 괴링 창업자는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석유 파동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 일각에선 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주요 정유사 주주도 기업 순이익 극대화를 위해 원유 생산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량 조절도 변수다. 하지만 일부 원자재 투자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원유 투자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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