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만 해도 고진영(28)은 손목 부상으로 애를 먹었다. 손목에 문제가 생긴 이유 가운데 하나는 비거리 욕심이었다. 그의 측근은 “정상의 기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려야겠다는 생각에 공을 멀리 보내는 데 집착한 것 같다”고 전했다.

손목 부상이 심해지자 고진영은 구질에 변화를 줬다. ‘비거리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비거리가 더 나는 드로 구질을 버리고 지금의 페이드 구질이 나오는 형태로 스윙을 바꿨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론대로라면 줄어야 하는 비거리가 오히려 늘어나면서다.

고진영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 1라운드에서 드라이브 비거리 평균 281야드를 기록했다. 2라운드에선 278야드를 때렸다. 이틀 평균 279.5야드로 1, 2라운드 비거리만 놓고 보면 현재 투어 장타 1위인 매넌 드 로이(31·벨기에)의 275야드보다 더 나갔다.

고진영의 스승인 이시우 코치는 “이전 스윙과 비교해 거리가 15야드 정도 더 늘어난 것 같다”며 “페이드 구질로 치면서 정확성이 높아졌는데 공도 더 멀리 나가니 성적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드로 구질에서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을 때는 백스윙을 팔로 시작하는 느낌이 있었다”며 “지금은 몸이 먼저 회전하고 팔이 따라오는 느낌으로 하다 보니 페이드 구질이라도 자연스레 비거리가 더 늘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팔이 덜 개입하고 몸통의 꼬임을 이용한 힘으로 스윙하다 보니 스윙 스피드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정확성에 비거리까지 장착한 고진영은 ‘제2의 전성기’를 알리고 있다. 그는 15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클리프턴의 어퍼 몽클레어CC(파72·6536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합계 13언더파 275타를 친 뒤 이어진 호주동포 이민지(27)와의 연장에서 파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은 45만달러(약 6억원). 투어에서 들어 올린 15번째 우승 트로피다. 지난 3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이후 약 두 달 만에 우승을 추가했다. 또 2019년과 2021년에 이어 이 대회에서만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최다승 기록 보유자’로 등극했다.

고진영은 “임성재 선수가 (지난 14일 우리금융 챔피언십에서) 5타 차를 이겨내고 우승하는 것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며 “나도 내 경기만 잘하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집중했고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진영은 3라운드까지 선두 이민지에게 4타 뒤진 공동 4위여서 역전 우승이 쉽지 않은 듯했다. 이민지가 전반에 1타를 잃고 주춤한 사이 고진영은 3타를 줄이며 우승 경쟁에 합류했지만, 이민지가 다시 후반에 15번홀(파3)까지 버디 3개를 추가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고진영은 마지막 3개 홀에서 승부의 추를 크게 움직였다.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모두 버디를 기록한 18번홀(파4)에서 또다시 버디를 잡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민지가 16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해 1타를 잃자 고진영은 이 홀에서 약 5m 거리의 까다로운 내리막 퍼트를 성공하면서 동타를 만들어 기어이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기세가 오른 고진영은 18번홀에서 열린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파를 지켰고, 훨씬 더 유리한 지점에서 버디 퍼트를 남겨뒀던 이민지는 파 퍼트까지 실패해 고진영의 우승이 확정됐다. 고진영은 “한 대회에서 두 번 우승도 쉽지 않은데 운 좋게 세 번째 우승을 이뤘다”며 “지난해 흔들렸던 스윙을 올해는 견고하게 유지해 남은 시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