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한경 DB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한경 DB
"애널리스트로 데뷔하기 위해 3년간 주말 없이 힘든 리서치어시스턴트(RA) 과정을 이겨냈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은 투자자들의 욕설과 주변의 눈치 뿐이네요. 애널리스트로 소신을 지키기도 쉽지가 않아요.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주는 투자은행(IB) 분야로 자리를 옮기고 싶습니다."(A증권사 애널리스트)

남부럽지 않은 고액 연봉을 자랑하며 한때 증권사의 '꽃'이라 불리던 애널리스트가 갈수록 설 곳을 잃고 있다. 펜데믹에 이어 유례없는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증시가 예측과 정반대로 움직이자 '양치기 소년' 신세로 전락할 판이다.

증권사 내 애널리스트들의 입지도 점차 좁아지고 있다. 심지어 증권사가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리서치센터가 정리대상 '1순위'라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과거 애널리스트가 능력을 인정받고 거액에 스카우트되는 사례는 이제 전설로 치부되고 있다.
동네북 된 애널리스트, 소신 아닌 '눈치'
최근 증시가 연저점 행진을 이어가자 애널리스트들을 괴롭히고 있다. 가늠하기 힘든 사태가 전개되면서,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예상안이 번번이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전문가인 애널리스트의 분석보단, 유튜브 등을 통해서 비전문가들의 전망을 의존하기도 한다. 리딩방이 대표적인 경우다.

연초 상당수의 애널리스트들은 가 10만원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가능성 등 증시나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만한 요소들이 대기하곤 있었지만 그리 큰 악재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당시 주어진 경제지표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였다.

지수가 잠시 주춤하겠으나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개선됨에 따라 '10만 전자'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공급망 문제까지 불거지자, 대내외 환경이 급격히 안좋아졌다. 결국 삼성전자 10만원이 될 것이란 전망은 크게 빗나갔다. 삼성전자 주가도 5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경 DB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경 DB
투자자들은 비난의 화살을 애널리스트들에게 돌리고 있다. 잘못된 전망으로 손실을 떠안았다는 이유에서다. 분명 애널리스트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지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변화 무쌍한 대내외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널리스트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매도' 의견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 리포트 관행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낮춘 이유로 꼽는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목하면서도, 개인으로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리포트에서 투자의견을 하향 하거나 목표주가를 내릴 경우 회사 안팎에서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널리스트가 소속돼 있는 리서치센터 입장에서는 IB나 법인영업으로 버는 수익을 생각하면 매도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 결국 투자자를 위해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애널리스트 사이에선 '소신'이 사라지고 '눈치'가 자리잡고 있게 됐다.
의문의 리포트 실종 사건…자괴감 느끼는 애널리스트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던 뉴딜펀드 정책을 비판한 증권사의 분석 리포트가 아무런 설명 없이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리포트에는 정부 주도 뉴딜펀드에 은행이 동원되면 주주에게 직간접의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당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으로부터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리서치센터 내부에선 정부 눈치를 보던 경영진이 리서치센터를 압박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애널리스트가 소신껏 리포트를 쓸 수 있을까.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분석 리포트를 유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투자자들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면, 그들을 위한 리포트를 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하지만 리포트를 유료화 하더라도 리서치센터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증권사의 리포트 유료화 취지는 '공들여 만든 리포트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방점이 찍힌 것이지, '투자자에게 소신 있게 정보를 전달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유료화는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거와 달리 지금 일선에서 뛰고 있는 애널리스트들은 단순히 기업 방문과 리포트 작성 등에서 자신의 업무가 끝나지 않는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국내외 리테일 영업점 마케팅 지원에도 적극 나가고 있다. '분석'이란 본연의 업무 비중은 줄어들고, 영업에 대한 압박은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월급 오르거나, 업무 환경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몇몇 잘못된 애널리스트들이 선취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고, 막대한 차익을 내면서 전체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도까지 깎아먹고 있다. 일선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힘빠지는 이야기다.

증시 활황이 돌아오고 증권주가 오르면 애널리스트에게도 다시 봄날이 올까. 작년 증시 호황 속에서 지켜본 결과, 큰 변화는 없었다. 시장은 증권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단순히 리서치 유료화 등을 통해 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증권사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는 리서치센터를 만들기 위해선 독립적인 리서치센터 운영이 필요하다. 특히 고객사의 컴플레인에도 애널리스트를 방어해 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 경우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과 함께 리서치 유료화라는 목표 달성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

독립적인 리서치센터 운영이 가능해진다면, 시장의 투명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가 소신있게 할 말을 해야, 자본시장의 감시자 역할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