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통상전쟁’ 전선을 환율로 확대하면서 전 세계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유럽연합(EU)이 통화 가치를 조작한다며 직격탄을 날렸고 기준금리를 인상해 달러 강세를 초래한 미 중앙은행(Fed)에도 날을 세웠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며 세계 금융시장 전반에도 파급 효과가 확산하고 있다.◆“환율조작 여부 면밀히 관찰 중”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중국과 EU가 환율을 조작하고 금리를 낮추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미국은 금리를 올리면서 달러화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전일 달러 강세 배경인 Fed의 금리 인상을 비판한 데 이어 이날 중국과 EU의 금리와 통화까지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미국은 불법 환율 조작이나 나쁜 무역협정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야 한다”며 통상전쟁과 더불어 ‘통화전쟁’에도 나설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도 이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한 인터뷰에서 “위안화 약세가 환율 조작 신호인지 여부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며 “위안화 문제를 오는 10월15일 발행하는 재무부 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면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세계 외환시장은 출렁였다. “50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으로 이날 장중 2년 만에 최저 수준인 달러당 6.8365위안까지 떨어졌던 위안화 가치는 트윗 내용이 알려지자 곧바로 반등했다. 위안화는 22일 장외시장에서도 달러당 6.7618위안으로 강세를 이어갔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0일 전날보다 0.77% 내린 94.42로 마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强)달러 비판으로 전날 내린 데 이어 또 급락했다. 이날 하락폭은 하루 기준으로는 최근 3주 동안 가장 컸다. 장외에서는 94.25까지 내렸다. 달러·엔 환율도 이날 0.83% 내린 111.52엔에 거래됐다. 지난 2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에 비해 급락한 것이다.◆증시와 유가, 신흥국 영향 불가피블룸버그통신은 미·중 통화전쟁은 세계 외환시장뿐만 아니라 주식시장, 원유시장, 신흥시장 자산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젠스 노르드빅 외환 분석가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으로 미·중 통상전쟁은 통화전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환율과 관련한 글로벌 협조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전문가들은 미·중 통화전쟁이 본격화되면 세계 무역이 줄고 경기가 냉각돼 위험자산과 유가가 급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러시아 루블, 콜롬비아 페소, 말레이시아 링깃 등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의 통화 가치도 급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시아 각국과 중앙은행엔 비상이 걸렸다. 아시아는 수출에 유리하도록 통화 약세를 유도하는 국가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블룸버그는 “Fed의 금리 인상을 점치며 달러 강세에 베팅해온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들도 당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으로 달러가 앞으로 어떻게, 얼마만큼 움직일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중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1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금융시장 불안감이 확산하고 중국 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전쟁 와중에 미국이 위안화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이다. 금융당국이 이미 위안화 가치 방어를 위한 행동에 들어간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22일 중국 외환시장에 따르면 공상은행을 비롯한 중국 주요 국유 은행들은 역내·외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한 외환 트레이더는 “국유 은행이 중국 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6.81위안에 달러를 팔고 있다”며 “달러 매도를 넘어 역내·외에서 달러 유동성도 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외환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조만간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 하락을 진정시키기 위한 구두 개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동안 인민은행은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6.8위안에 근접할 때마다 “적절한 수준에서 환율을 안정시킬 것”이라며 위안화 가치 하락세에 제동을 걸어왔다.위안화 가치는 7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인민은행은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20일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전날보다 0.90% 올린 6.7671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 환율 인상은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그만큼 평가절하됐다는 뜻이다. 고시환율을 기준으로 하면 이날 위안화 환율은 지난해 7월14일(6.7774위안) 이후 약 1년 만의 최고치다. 위안화 가치는 한때 역외 시장에서 달러당 6.83위안, 역내 시장에선 6.81위안까지 하락하기도 했다.위안화 가치는 미·중 통상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3개월 동안 8% 하락했다. 달러 강세 영향도 있지만 일각에선 미국의 관세 폭탄에 따른 수출 감소를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자 인민일보는 미국에 낭떠러지에서 말 고삐를 돌리라고 경고했다. 신문은 22일자 사설을 통해 “미국은 무역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저지른 악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주장했다.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미국과 중국 간 무역마찰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우리 경제의 ‘유커 윔블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유커 윔블던이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자국 선수인 영국인보다 외국 선수가 우승하는 횟수가 더 많은 것에 빗대어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인인 한국보다 중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최소자승법, 벡터자기회귀 등으로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 간 상관계수를 구해보면 0.45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의 상관계수보다 1.5배 이상 높게 나온다. 같은 기간 위안화와 원화 간 상관계수는 무려 0.60에 달한다. 주식시장보다 외환시장에서 유커 윔블던 현상이 더 심하다는 의미다.주목해야 할 것은 미·중 간 마찰이 본격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원화와 위안화 간 상관계수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12월 원화와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된 토대 위에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대발산(GD: great divergence)’이 재현된 것도 원인이다.1990년대 중반 GD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 상황을 보면 독일 분데스방크는 금리를 연 5.0%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연 3.75%에서 4.25%로 인상한 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연 6%까지 올렸다. 1995년 4월에는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루빈 독트린’ 시대도 전개됐다.Fed의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로 미국 경제는 ‘외자 유입→자산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신경제’와 ‘슈퍼 달러’ 시대를 맞았다. 반면 신흥국은 자금 이탈에 시달리면서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그린스펀-루빈 쇼크’로 어려움을 겪었다.미·중 간 무역마찰은 쉽게 타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인 데다 경제발전 단계 차이가 워낙 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쉽게 줄어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스트롱맨인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입장에서도 밀리면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 또한 부담이다.미·중 간 무역마찰로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세계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과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을 말한다. GVC가 약화되면 세계 교역량이 위축돼 중국, 한국과 같은 수출지향적인 국가일수록 타격을 받는다.중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통상 요구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지급준비율 인하, 위안화 약세 유도 등으로 완충 장치(airbag)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 초 달러당 6.2위안대까지 강세를 보였던 위안화 가치가 최근 6.8위안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갈 정도로 급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중국,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2 루빈 독트린’이라 불리는 ‘커들러 독트린’ 시대가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Mercury)’로 표현되는 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로 지칭되는 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 경제는 당분간 성장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출범 초 약(弱)달러 정책은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이 안 돼 강(强)달러 정책으로 바뀌었다.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위안화발(發) 금융위기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에서 금융위기가 일어난다면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될 것인가 아니면 ‘위기 축소형’으로 수렴될 것인가는 두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는 레버리지 비율이 얼마나 높으냐와, 다른 하나는 투자 분포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글로벌 정도에 좌우된다.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된 것은 위기 주범이었던 미국 금융회사의 이 두 지표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중국은 두 지표 모두 낮은 편이다. 최근 우려대로 위안화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미국식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될 소지는 작다.그 대신 위기 비용을 중국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JP모간이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이 큰 국가를 ‘취약 5개국(F5: Fragile 5)’, 모건스탠리가 중국 문제로 충격이 큰 국가를 ‘투자불안 10개국(T10: Troubled 10)’으로 구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T10’의 대표국가다. 한국 정부의 정책 대응과 투자자의 전략은 이 점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