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ELS(주가연계증권) 평가손익을 당기순손익에 반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바이오벤처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 조중명 사장은 지난 19일 한경닷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주가 폭락으로 손실을 입은 ELS 평가액을 그대로 당기순손실로 처리하면서 '흑자기업'(순이익 8억원)에서 '적자기업'(순손실 74억원)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ELS란 특정 주권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의 수치에 연계한 증권이다. 자산을 우량채권에 투자해 원금을 보존하고 일부를 주가지수 옵션 등 금융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이다. 2003년 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상품화됐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ELS의 만기가 도래해 직접 손실을 입은 것은 아니다. 평가손실일 뿐이므로 당기순손실로 처리한다고 해서 기업 자체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투자자에 대한 신뢰'와 '앞으로 사업계획'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조 사장은 우려하고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 뿐만이 아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기업중에 큐에스아이, 안국약품, 테스, C&S마이크로, 아비코, 중앙백신 등이 ELS손실분을 당기순손익에 반영했다고 정정공시를 냈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선 유니드와 대교가 ELS 손실분을 반영한 당기순이익을 발표한 상태다.


◆ELS 회계처리 왜 문제가 됐나

상장사들이 ELS의 손실분을 포함해 실적을 정정하게 된 것은 회계법인들이 외부감사를 하면서 이를 문제삼으면서 시작됐다.

회계법인은 1차 회계감사에서는 과거 사례 등을 들어 ELS 평가손익을 당기순손익에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 감사보고서를 검토하던 중 금감원과 협의하면서 ELS의 손실분을 당기순손실로 처리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결국 약 10개 상장 기업이 만기가 됐든 안됐든 ELS 손실분을 그대로 당기순손익에 반영키로 하고 정정공시를 낸 것.

기업들이 ELS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일반적인 투자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지난 몇 년간 증시가 상승세를 보여오면서 ELS는 중소 상장사에 은행금리 이상의 이익을 안겨줬고 상장사들은 대부분 이 손익을 대차대조표의 자본계정(자본조정)으로 처리해왔다.

하지만 지난 해 10월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ELS도 손실을 입게됐다. 기업들이 가입되어 있는 ELS는 대부분 코스피200의 움직임에 따라 손익이 좌우되기 때문에 지수폭락은 결국 손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그동안 ELS는 손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본조정으로 회계처리를 해왔다"면서 "이번에 ELS가 평가손실이 나면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한국회계기준원과 금감원이 자세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회계기준원의 파생상품 회계부분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현재 그 문제(ELS 회계처리 문제)에 대해 내부적인 협의를 거치고 있다"면서 "명확한 기준이나 해석이 나오는 대로 답변을 하겠다"며 대답을 미뤘다.

ELS 등 금융상품에 대한 회계처리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 뿐이 아니다.

2003년 ELS의 회계처리에 대한 업계 질의서에 대해 금감원은 ELS에 투자하는 경우 경제적 특성(채권원금, 파생상품, 수수료 등)별로 세분화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회계처리를 하라고 답변했다. 다시말해 평가결과를 당기손익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하며 이익이 났다면 수익으로 인식해야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2006년에 금감원은 내재파생상품(파생상품이 포함된 금융투자상품)의 분리회계처리와 관련, "주계약을 포함해 단일 계정과목으로 회계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을 내렸다. 당기순익이 아닌 또다른 단일 계정과목으로 만들라는 이야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ELS 평가손익을 당기순손익에 반영하는 것이 맞다"며 2003년의 답변을 고수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ELS를 통해 기업이 이익을 얻었을 때에도 당기순이익에 포함해야 하고 손실이 났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손실처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처리되야"

ELS 손실을 처리해 정정공시를 한 A업체는 이날 주주총회를 했다. 이 회사의 회계담당자는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며 "주주들이 회계관습이라는 점을 이해해 줘 감사보고서가 원안대로 통과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회사가 실제로 시연된 이익이나 손해가 아니었다"며 "회계관습으로 굳어져왔고 이렇게 습관적인 부분도 회계에서 '중요성의 원칙'에 포함된다"며 말을 아꼈다. 과거에 습관적으로 해왔던 회계방식은 타당하게 적용된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정정업체인 B회사의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그나마 손실분이 작은편이지만 한순간에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업체들은 충격이 심했을 것"이라며 "이번을 계기로 구체적인 기준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일부 회사들은 ELS를 반영하지 않은 당기순이익으로 감사보고서는 물론 주주총회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금감원 기업공시부 관계자는 "감사보고서가 완료됐어도 정기보고서 제출기한인 이달 말까지 정정할 수 있다"면서 "다만 정정할 경우에는 정정공시도 동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