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반치 일감을 쌓아놓고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조선업계. 발주처가 대부분 독일 그리스 등 유럽업체들이어서 유로화 강세로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추측해 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유로화 결제 비중이 '제로(0)'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박건조 대금은 요즘 내리막길을 줄곧 걷고 있는 달러화로 입금돼 환차손을 우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사실 국내 기업들이 유로화 강세로 혜택을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제통화 결정권이 약해 유럽과 거래해도 수출은 달러화로, 수입은 유로화로 결제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출기업도 유로화 강세의 혜택은커녕 원ㆍ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산 제품을 수입하는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유로화 강세 추세에 무방비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 원ㆍ유로, 한달새 1백원 상승 지난달 22일 1천3백8원대까지 가라앉았던 원ㆍ유로 환율(고시환율 기준)은 최근 들어 급상승, 이달 21일에는 1천4백원대까지 치솟았다. 한 달만에 환율이 1백원 가량이나 오르면서 지난 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 미국이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다 국제 투자자금도 금리와 주가가 낮은 미국보다 유럽 쪽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유로화 강세 혜택 못 봐 한국은행은 수출입 관련 거래통화 가운데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3∼4%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액 1천6백24억달러 중 유로화 결제비중은 3∼4%인 48억7천만∼64억9천만달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EU지역 수출액이 2백16억9천만달러(총 수출의 13.4%)인 점을 감안하면 EU지역 수출 중에서도 유로화 결제비중은 22.4∼29.9%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EU 외 다른 지역으로 수출할 경우 유로화 결제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치다. 유로화 결제비중이 이처럼 낮은 것은 유로화의 추이를 예측할 만한 데이터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기업체의 수요가 지지부진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조문기 한은 외환시장팀장은 "기업들이 달러화 거래관행을 고수해 유로화 가치 상승에 따른 이득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 수출기업 수익성 관리 비상 달러화 결제비중이 높은 수출업체들은 원ㆍ달러 환율이 1천2백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북핵사태에도 불구,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천1백5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체 매출중 수출비중이 70%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원ㆍ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경우 매출이 1천2백억원 줄어들게 된다. 삼성전자의 달러결제 비중은 70%인 반면 유로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현대자동차도 전체 수출대금 가운데 70%가 달러 결제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증권은 유로화 강세에도 불구, 달러약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현대차의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기업들도 점차 달러화 일변도에서 탈피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유로화 결제비중을 현재 30%에서 향후 40∼50%까지 높이기로 했다. LG전자도 중동 동남아 등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 유로화 결제비중을 늘리는 등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코오롱은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8.3%에 불과하던 유로화 결제 비중이 올해는 16.6%로 두 배나 늘었다. 이심기ㆍ안재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