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원에서 행복을 묻다…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
일본의 가장 큰 섬 혼슈 중부의 산악지대에 있는 오제국립공원은 해발 1천500m에 있는 산간 습지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이곳은 신비로운 자연과 다채로운 동식물들로 가득하다.

사람은 두 줄로 놓인 나무판자를 따라 조용히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공원 안에 있는 산장에 필요한 식자재와 물건들을 등에 지고 이 나뭇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있다.

'봇카'라고 불리는 이들은 70∼80㎏에 달하는 짐을 지게에 싣고 일주일에 6일, 왕복 20㎞의 이 길을 오간다.

24년차 베테랑 봇카 이가라시는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짐을 산장에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하루하루 다른 오제의 풍경을 담는다.

쉬는 날에는 지게 대신 배낭을 메고 아들의 손을 잡고 나뭇길을 걷기도 한다.

어린 아들은 아빠가 쉬는 자리를 용케 찾아내고, 두 사람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함께 바라본다.

혼자 익힌 기타 실력도, 사진 실력도 수준급인 이가라시의 생활이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어깨 부분이 해진 티셔츠를 벗으면 멍들고 상처 나고 굳은살이 박인 마른 몸이 드러난다.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나 거센 바람이 부는 날, 때로 비에 젖어 미끄럽거나 눈이 쌓여 보이지 않는 나뭇길을 걷는 일은 더 힘겹다.

그런 날에도 여전히 머리 위로 높이 쌓인 짐을 지고 속도를 낮춰 걸으며 내뱉는 거친 숨소리와 코끝을 타고 떨어지는 땀방울까지도 카메라에 담겼다.

천상의 화원에서 행복을 묻다…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
박혁지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인 '행복의 속도'는 20여년 동안 날마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단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가라시를 통해 각자가 걷고 있는 행복의 길을 묻는다.

2016년 EBS가 기획한 잊힌 옛 직업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하나로 눈이 남은 봄에 일주일 정도 촬영해 봇카를 소개했던 박 감독은 이가라시라는 사람과 오제의 사계절을 담고 싶은 욕심에 이듬해 다시 오제를 찾았다.

그렇게 4K 카메라에 담긴 오제의 사계절은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드론을 통해 광활한 습지를 한눈에 담았던 카메라는 할미새와 변태하는 곤충, 희귀 야생화에도 가까이 다가간다.

그 안에서 육체노동자이자 자연에 감사하고 만끽할 줄 아는 한 사람의 묵묵한 걸음과 조용한 웃음, 정직한 땀방울이 아름다움과 감동을 배가한다.

박 감독은 시사회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쳇바퀴 도는 일상에 지치기도 해 한 번은 이가라시에게 지겹지 않냐고 물었더니 '단 순간도 같은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됐다"며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싶어 그런 그가 궁금해졌고 영화로 만들고 싶어졌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이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만족하고 자존감을 유지하는 그들을 보면서 자극이 많이 됐고, 내가 걷는 길은 이 방향이 맞나, 빠르기는 적당한가, 끊임없이 자문했습니다.

관객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18일 개봉. 전체관람가.

천상의 화원에서 행복을 묻다…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