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장동건(40)이 상하이 최고의 플레이보이로 변신했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중국영화 ‘위험한 관계’에서 주인공 셰이판 역을 맡아 장쯔이와 장바이즈를 상대로 ‘마음 훔치기 게임’을 벌인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방송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이은 또 다른 바람둥이 역이다. ‘위험한 관계’는 배용준이 주연한 ‘스캔들’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5편이나 리메이크된 연애영화의 고전.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고 장동건이 개런티 13억원을 받은 이 영화에는 중국 자본 200억원이 투입됐다. 최근 중국에서 개봉돼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장동건을 만났다.

“그저께 중국에 다녀왔는데 기분이 좋습니다. 개봉관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1위에 올랐으니까요. (‘마이웨이’ 등이 흥행에 실패한 뒤) 영화로는 오랜만에 좋은 성적입니다.”

‘위험한 관계’는 1930년대 상하이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세 남녀의 욕망과 질투를 포착했다. 당시 상하이의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사랑도 게임으로 변질된다. 장동건이 정절녀 장쯔이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영화의 백미. 장동건이 맡은 셰이판은 섹시한 남자배우들에게 통과의례 같은 배역이다.

“‘위험한 관계’는 삼각관계의 교과서예요. 인간의 욕망, 사랑과 질투를 흥미롭게 묘사하니까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제 배역은 라이언 필립, 콜린 퍼스, 존 말코비치 등 명배우들이 했어요. 고(故) 장국영도 원했던 배역이라더군요. 저는 처음에는 셰이판을 음산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생각했지만 허 감독은 유쾌하면서도 유머있는 인물을 원했어요. 그게 맞더라고요. 그래서 콧수염을 붙이고 밝은 인물로 만들어갔습니다. 역대 배역 중 가장 유쾌한 인물일 겁니다.”

그는 선입견이 생길까봐 캐릭터를 잡은 뒤에야 전작들을 봤다고 한다. 존 말코비치가 주인공으로 나선 버전이 완성도가 최고였다고.

“‘신사의 품격’에서처럼 제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었어요. 로맨스물은 ‘이브의 모든 것’ 이후 12년 만이에요. 오랜 기간 매너리즘에 빠진 제 모습에 싫증났습니다. 그런데 (기존 이미지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아 이제서야 해낸 거죠. 허 감독과 함께 대화하면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갔습니다.”

허 감독은 배우의 견해를 충분히 반영해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장동건은 자신의 의견을 점점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중국인데도 촬영장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고.

“중국어 대사가 가장 어려웠죠. 중국 영화는 촬영이 모두 끝난 뒤 더빙을 하기 때문에 굳이 중국어로 연기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어로 연기하니까 감정이 잡히지 않더군요. 천카이거 감독의 ‘무극’에 출연했던 경험이 중국어 연기에 크게 도움됐습니다.”

중국의 두 최고 여배우와의 호흡은 훌륭했다. 극중 장동건과 공모해 과부 장쯔이를 유혹하기로 내기하는 장바이즈는 ‘무극’에서도 만났던 사이다.

“같은 여배우와 두 번 공연하기는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아이가 생긴 장바이즈는 예전보다 깊어지고 성숙해졌더군요. 장쯔이는 현장에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치열함이 있었어요. 세계적인 배우가 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그는 이번 영화처럼 해외 합작영화에 자주 출연할 계획이라고 했다.

“결과보다 제작 과정에 의미가 있어요. 문화와 정서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만드니까요. 중국은 이질감도 적어요. 다만 합작 시 깊이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문제가 안됐어요. 완성도가 높으니까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