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MBC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7억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아침 드라마 '그래도 좋아'를 자회사가 만들었는데도 외주제작사가 만든 것처럼 꾸며 협찬을 받은 탓이다. '무늬만 외주제작'은 방송계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상파의 인력이나 시설에 의존하지 않고는 외주제작사들이 드라마 하나 제대로 만들 수 없다 보니 지상파방송사들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외주제작뿐만이 아니다.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케이블방송채널(PP)들도 영세하기 이를 데 없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등록된 174개 PP 가운데 매출액이 5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130곳(74.7%)에 이른다. 지상파방송 외에는 제대로 된 방송콘텐츠를 만들기 어려운 시장 환경 탓이다. 미디어법 개정으로 종합편성 · 보도전문채널이 내년 상반기에 나오게 됐지만 방송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지상파방송의 독과점 구조가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PP 절반이 적자에 허덕

지난해 PP 전체 매출액은 3조537억원으로 국내 방송시장의 35.4%를 차지했다. 1조6795억원인 케이블TV(SO)에 비해 두 배가량 많다. 그러나 속내를 따져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PP 매출의 절반을 넘는 1조5533억원이 CJ오쇼핑 GS홈쇼핑 농수산홈쇼핑 우리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5개 홈쇼핑채널 매출이기 때문이다.

PP들의 규모도 영세하기 이를 데 없다.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는 곳은 CJ미디어 온미디어 등 29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PP의 절반을 넘는 95개사가 적자를 내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종업원 수가 10명 미만인 곳도 52개에 이른다. 국내 PP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국내 방송시장이 지상파 위주로 돼 있어서다.

KBS엔,엠비씨게임,MBC드라마넷,지역MBC수퍼스테이션,MBC ESPN,SBS골프,SBS드라마플러스,SBS스포츠,SBSi,SBS이플러스 등 10개 지상파 계열 PP의 작년 매출액은 4352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862억원이 늘어났다. 지상파방송사들이 주 채널에서의 매출 감소를 계열 PP를 통해 보전하고 있는 셈이다.

광고수익도 지상파가 독식하다시피한다. 작년 지상파방송사의 광고수입은 2조1998억원으로 전체의 68.5%를 차지했다. 케이블방송채널을 모두 합친 금액(8796억원)보다 두 배나 많다.

김진경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미디어지원국장은 "케이블방송의 가입자당 평균 매출이 6000원 안팎에 불과한 탓에 PP들이 콘텐츠 수익을 얻지 못하고,제대로 된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종편,콘텐츠 유통시장 바꿀까

국내 외주제작사들은 미디어법 통과를 반기고 있다. 종편 · 보도채널이 최대 4개 생겨나면 지상파방송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방송 콘텐츠의 유통과 소비는 철저하게 지상파방송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촬영소를 갖춘 외주제작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영세해 제작도 지상파방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지상파 채널에 몰리다 보니 지상파가 아니면 프로그램 제작비도 건지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외주제작사들은 프로그램을 만들고도 지상파에 저작권을 통째로 뺏기고 있다.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해외에 드라마가 비싼 값에 팔려도 독립제작사들에 돌아가는 몫은 거의 없다"며 "외주제작사들이 질좋은 방송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상파에 종속된 유통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콘텐츠업계가 종편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종편은 지상파방송과 다를 바 없는 방송채널이어서 지상파들이 기존의 관행을 고집할 경우 외주제작사들이 종편채널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700억원을 투입하는 뉴미디어방송센터가 2012년 들어서면 외주제작사들이 지상파방송의 도움없이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최성호 방통위 방송통신진흥정책과장은 "종편 · 보도채널의 등장은 지상파방송과의 경쟁을 활성화시켜 다양한 방송콘텐츠를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