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영화를 한 편 찍고 나면 5∼6㎏씩 살이 빠졌지요. 이번에는 오히려 몸무게가 불었어요. 육체적으로는 그만큼 편했는데 결코 코미디가 만만한 장르는 아니더라구요. 시사회 광경을 보니 만들 때 연기자와 스태프가 배를 잡고 웃었던 대목에는 안 웃고 오히려 밋밋하게 느껴졌던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더군요." 11월 5일 개봉 예정인 `영어완전정복'(제작 나비픽처스)의 김성수(42) 감독은 `무사', `태양은 없다', `비트', `런어웨이' 등 선굵은 남성 드라마를 주로 만들어온 액션전문 감독. 모처럼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코믹 멜로물에 도전장을 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야 적성에 맞는 장르를 찾아갔다"고 말한다지만 그의 영화를 보아온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시나리오를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코미디나 액션이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해요. 차이라면 코미디 영화의 작업 환경이 액션에 비해 편하고 재미있다는 것뿐이지요. 예전에는 제가 호통도 치고 욕설도 해대 촬영장 공기가 살벌했는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습니다. 처음 기획안을 만났을 때 엄청나게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여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자신이 없기는 했지만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지요." 이나영과 장혁이 주인공을 맡은 `영어완전정복'은 영어회화 학원에서 만난 청춘남녀의 사랑 만들기를 뼈대로 삼은 뒤 전국민이 영어 콤플렉스에 빠진 우리나라 상황에서 일어날 만한 갖가지 해프닝으로 살을 입혔다. 김성수 감독은 영어가 좀 되는 `부러운' 케이스. 성장기를 미군들이 득실대는서울 이태원에서 보냈고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해일상회화쯤은 걱정이 없다. 그런 그에게도 영어 콤플렉스가 있을까? "영어를 쓸 일이 별로 없는데도 여전히 영어가 두렵습니다. 중학교 때 백마 탄나폴레옹이 그려져 있는 교재 `영어완전정복'의 첫장을 넘기면 `영어에는 왕도가 없다(There is no royal road in English)'란 말이 써 있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제게 아무도 영어 정복을 강요하지도 않지만, 유치원 때부터 영어테이프를 들려주고 혀를 잘 굴리라고 수술까지 해주는 상황을 보면서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다른 코미디 영화와 어떤 차별성을 보이려고 했느냐"고 묻자 "차별성을 두기보다는 요즘 잘 나간다는 코미디와 비슷하게 보이려고 무지 애썼다"고 털어놓는다. 초반에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 이색적인 장치를 많이 쓴 이유에 대해서는 "풍자성과 상징성을 강조하려고 재주를 피웠으며 주인공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안착했다고 여겨지는 후반부터는 테크닉을 자제했다"고 설명했다. 김성수 감독과 함께 제작사 나비픽처스를 만든 조민환 프로듀서는 "창립작으로어느 정도 흥행성적을 올리기 위해 코미디를 택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코미디도 즐겁지만 끓는 피를 식히려면 역시 액션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김성수 감독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49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무협영화를 찍기 위해 내년에 중국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무사' 때 황량한 중국대륙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도 아직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