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손숙.윤석화.

각각의 이름만으로도 넘치는 중량감을 지닌 세사람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은 진작부터 연극팬들을 들뜨게 할만하다.

13일 막오르는 화제작 "세자매"(안톤 체홉 원작,연출 임영웅,30일까지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초석을 놓은 고 이해랑 선생 11주기 추모공연이다.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이른바"여배우 빅3"의 하모니는 큰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재료다.

"작년부터 추모공연을 기획했어요.

이해랑 선생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깊은데다 산울림극단이 이해랑 연극상(2회)을 받은 인연이 있지요.

세사람 모두 같은상 수상자니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선생이 체홉을 몹시 좋아하셔서 작품을 고르다보니 세자매가 제일 적당했구요"

임영웅(64)산울림 소극장 대표는 작품선정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연극계의 대부로 세 여배우와 작품을 가장 많이 했던 만큼 모두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개인 스케줄을 함께 맞추려다 보니 11주기 추모공연이 됐다.

"세자매"는 세계적 희곡작가인 러시아 안톤 체홉의 대표작.

러시아 혁명 직후 지방 소도시 귀족가의 세자매를 주인공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인간소외,고독,무관심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임씨는 "작품이 1백년전 쓰여졌지만 당대 러시아뿐 아니라 전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보편성과 정서를 담고 있다"며 "보통 체홉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틀로 해석해왔다면 이번에는 현대적 정서에 초점을 맞춘 현대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배역은 나이순이다.

박정자(58)는 보수적인 맏딸 올가,손숙(56)은 감성적인 로맨티스트 둘째 마샤,윤석화(45)는 철없지만 순수한 막내 이리나로 나온다.

20대 초.중반인 극중나이와는 모두 상당한 차이.

30년이상 젊어진 박씨가 "그런게 연기자의 특권"이라며 웃자 손씨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내면의 깊이를 보여줘야 하는 연기라 외국에서도 중년연기자들이 역을 맡는다"고 말을 받는다.

더욱이 배역과 실제 개성도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다는 게 임씨의 귀띰.

사실 그랬다.

단정한 남색 수트차림의 박정자는 차분하게 중심을 잡았고 연분홍 니트에 노랑색 구두의 손숙은 부드러운 빛깔을 보탰다.

양갈래 삐삐머리에 파란색 선글라스 윤석화는 특유의 말랑말랑한 애교로 분위기를 돋웠다.

워낙 화려한 색깔간의 조합에 "충돌"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임씨는 "프로들답게 앙상블이 훌륭하다"고 했다.

박정자의 말을 빌자면 윤석화는 주체못할 정도로 생기발랄하다.

윤석화는 "평소에도 친자매처럼 지내서 호흡이 잘 맞는다"며 "언니들"의 팔짱을 끼고 까르르 웃었다.

세사람의 아름다운 화음외에도 한명구 이용녀 서주희 전국환 이호성 주원성등 실력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극을 뒷받침한다.

(02)334-5915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