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가 설비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나섰다. 파운드리 업계 2위인 삼성전자가 TSMC의 격차를 좁힐 기회가 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TSMC는 지난 9일 열린 이사회에서 3억6610만달러(약 4830억원) 규모의 팹(반도체 생산라인) 투자 안건을 의결했다. TSMC는 통상 일정 수준 규모 이상의 설비투자를 결정할 때는 이사회 승인을 받는다. 이 같은 투자 규모는 지난 2월 열린 직전 이사회 때 처리한 설비투자(미국 애리조나법인 출자금 포함) 안건(104억5950만달러)과 비교해 96.5%나 삭감된 규모다.

이 회사는 올해 설비투자 목표액을 당초 320억~360억달러(약 42조2400억~47조5200억원)로 제시했다. 지난해 시설투자(363억달러) 규모에 비해 최대 11.8% 삭감한 것이다. 하지만 투자 규모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지난 9일 이사회를 통과한 저조한 설비투자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관측에도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대만 언론과 외신은 TSMC의 올해 설비투자가 종전 320억~360억달러에서 280억~320억달러(약 36조9600억원~42조2400억원)로 쪼그라들 것이라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TSMC가 투자를 줄이는 것은 나빠진 현금 창출력과 맞물린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은 2015년 이후 처음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망은 일부 현실화했다. 올 3월 매출은 1454억800만대만달러(약 6조23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1718억6700만대만달러)과 비교해 15.4% 줄었다.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월 매출이 감소한 것은 2019년 5월 이후 처음이다.

TSMC를 추격하는 삼성전자는 올해 50조원에 달하는 설비투자를 흔들림 없이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 편성한 설비투자 가운데 10조~15조원을 파운드리에 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파운드리 기술력도 향상되고 있다. 4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파운드리 공정의 수율(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70~90% 수준으로 지난해에 비해 큰 폭 올라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AMD가 4nm 공정에 기반한 중앙처리장치(CPU) 신제품 생산을 TSMC 대신 삼성전자에 맡기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사장)도 지난 4일 한 강연에서 “5년 안에 TSMC를 앞설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