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車반도체 없어 생산 줄인다…현대차·기아도 장기화 땐 차질 우려
한국GM이 특근(주말근무)을 중단한다. 노사 갈등이나 판매 감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 아니다. 손톱만 한 자동차용 반도체가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

▶본지 1월 6일자 A1, 3면 참조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크게 부족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가전·정보기술(IT) 제품에 들어갈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생산하느라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미룬 여파다.

자동차 공장 멈춰 세운 반도체

한국GM, 車반도체 없어 생산 줄인다…현대차·기아도 장기화 땐 차질 우려
2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23일 하려던 부평공장 특근을 취소했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에서 공급받고 있는 일부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당분간 특근과 잔업(추가근무)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차량 생산량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차량제어장치(ECU)와 인포테인먼트(차량 내 정보와 오락을 보여주는 장치) 관련 반도체 등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완성차업체가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감산하는 건 처음이다.

자동차에는 200~4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자동차 엔진과 변속기 등을 제어하는 ECU부터 온도 습도 등을 감지하는 센서까지 각 부품에 반도체가 필요하다. 차량 전후방 카메라,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인포테인먼트, 전자열쇠, 조명, 운전대, 사이드미러 등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부품이 거의 없을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계식으로 제어하던 부품들도 센서로 제어하는 전자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은 대부분 생산시설이 없는 팹리스(설계전문 업체)다. 이들은 TSMC와 삼성전자, UMC 등에 생산을 맡긴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등의 수요가 늘었다. 그 결과 파운드리 업체에 반도체 주문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차량용 칩 생산은 뒤로 밀렸다. 게다가 작년 하반기 차량 판매량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돼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해졌다는 설명이다.

“차량용 반도체 기술력 키워야”

독일 폭스바겐, 일본 도요타, 미국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반도체 부족 등의 이유로 이미 감산에 돌입했다. 포드와 피아트크라이슬러 등은 특정 공장 가동을 장기간 중단했고, 아우디는 직원 1만 명 이상이 휴직에 들어갔다. “올해 자동차산업을 위협할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도, 글로벌 경기 침체도 아니라 반도체 공급 부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도체 부족 현상은 그동안 ‘남의 나라 얘기’로 여겨졌다. 한국 완성차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재고를 확보한 데다 국내 반도체 업체로부터 물량을 우선 공급받을 것으로 기대해서다. 하지만 한국GM이 생산량 조정을 시작하면서 조만간 국내 자동차 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다른 완성차업체들은 약 1개월치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22일 완성차업계 및 반도체업계 관계자들과 긴급 간담회를 연다. 국내 팹리스업체 대표들도 참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 여력이 있는 파운드리 업체를 찾기 어려워 당장 물량을 늘리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추가로 주문을 넣는다고 해도 받기까지는 적어도 6개월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등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이 주력이 아니다. 또 설계를 담당하는 국내 팹리스 업체들도 다른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의 기술력을 키워 차량용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병욱/황정수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