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관련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익명화한 신용정보 활용

금융회사나 핀테크 업체가 신용정보 관련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트일 것으로 보이면서 이를 활용한 관련 산업이 크게 활성화할 전망이다.

금융회사들도 개인신용정보 관련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 가능성과 관련한 논란이 완전히 불식된 게 아니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발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뒤처진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기반 마련

7일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은 금융 분야와 관련한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각종 제도적 불확실성을 명확히 정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동안 관련 업계에서는 개인신용정보의 정의가 모호하고, 비식별 조치에 관한 기준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아 개인신용정보에 기반한 빅데이터 활용에 어려움이 많다고 불만을 제기해왔다.

당사자가 일일이 개인정보 분석과 제3자 제공에 대해 동의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하고 관련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조치된 정보를 각각 비식별 정보나 익명 정보로 정의해 자유로운 활용을 보장하는데, 한국은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빅데이터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요구사항을 수용해 개정안은 누구에 관한 신용정보인지를 알아볼 수 없게 가공해 익명화한 정보(비식별정보)는 개인신용정보의 범위에서 제외해 동의를 받지 않고도 통계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 신용평가 정교화 가능…맞춤형 금융상품 출시 기대

금융권에서는 신용정보 빅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지면 은행·카드·보험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새 상품을 개발하거나 시장개척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금융회사와 핀테크 업계에서는 은행, 카드, 보험 등 업권별로 분리된 개인신용정보를 업권 구분없이 결합할 수 있어야 실효성 있는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일례로 40대 직장인 A씨의 신용정보와 관련해 은행은 소득·대출 관련 정보만, 카드사는 결제 관련 정보만을 다룰 수 있었는데, 이렇게 업권별로 분리된 정보만으로는 활용도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개정령이 입법예고안대로 시행되면 카드사가 보유한 A씨 결제 정보와 은행이 가진 A씨 소득·대출 정보를 신용정보원이 취합해 묶은 뒤 A씨의 정보임을 알아볼 수 없게 가공해 금융회사에 다른 사람들 정보와 함께 빅데이터 형태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정보는 신용평가모델을 정교화하는 데 쓰여 금융중개 기능의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해 금융산업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간 신용등급자에 대한 신용평가모델을 정교화하는 데 쓰여 금융사들이 지금은 부재한 연 10% 대의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앞다퉈 출시할 수 있다.

금융 관련 마케팅 분야 활용도도 무궁무진하다.

카드사의 경우에는 거주지역과 직장 소재지, 소득, 연령대 관련 연관 정보가 취합된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특정 지역에서 근무하는 연봉 8천만원 이상 40대 남성 직장인'을 위한 특화된 카드를 출시하는 등 마케팅에 활용할 수도 있다.

고객 성향에 맞게 상품 및 서비스를 얼마나 빠르게 잘 개선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승패가 갈리는 곳들이라 이용자 분석의 수요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 "개인정보보호 안정성 검증 미흡"…민감정보 유출 우려

그러나 안전장치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빗장을 섣불리 풀면 사생활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위는 앞서 지난 4월 비식별 개인신용정보의 활용 근거를 명확히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빅데이터 활용과 관련해서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과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

이에 참여연대는 "신용정보는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내밀하고 민감한 내용을 수집하는 것이므로 사생활 침해가 최소화되는 상황에서만 정보의 수집과 유통 및 활용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의견서를 제출했다.

익명화한 정보라도 다른 정보와의 결합을 통해 누구의 정보인지를 다시 가려 낼 가능성이 여전히 남으므로 정보 이용 허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재식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최근 부처 합동으로 제정한 만큼 이런 논란이 불식됐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가이드라인에 따른 비식별 조치는 유럽연합의 익명화 수준과 동등하거나 더욱 엄격한 수준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있다"며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한편, 안전한 빅데이터 활용 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통계·학술목적 등으로만 제공·이용하는 경우 가이드라인에 따른 적정성 평가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가이드라인의 안정성도 검증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보다 더욱 완화한 조치를 성급히 추진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 흐름에 역행하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