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20년…사라지지 않는 차명계좌
오는 12일로 만 20년을 맞는 금융실명제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현상 유지냐, 보완이냐의 갈림길이다. 1993년 8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획기적 전환점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탈세를 방조하고 불법 자금의 세탁 통로로 활용됐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발단은 최근 검찰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미납 추징금 조사 과정에서 차명계좌를 활용한 자금 은닉 사실이 드러난 데다 대기업 비자금 수사에서도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가 무더기로 적발되면서다.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를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는 현행 금융실명제법의 허점을 악용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차명계좌를 활용한 저축은행 비리 규모만 6조754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차명재산도 2011년 기준 4조7344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약 270조원으로 추산(현대경제연구원 자료)되는 지하경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전면적인 차명거래 금지가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동호회나 문중 등의 계좌와 자녀 통장 등 관행화된 차명계좌까지 불법으로 보는 것은 과잉이라는 것이다.

홍범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차명거래 금지는 금융실명제의 마지막 퍼즐”이라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편법 증여와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이상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