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디젤 연료 부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주유소마다 트럭과 소형버스 등 디젤을 이용하는 차량이 수십 대에서 수백 대씩 길게 줄을 선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최대 300m 넘는 행렬에 끼어들기 차량까지 겹치면서 일부 주요소 인근에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보였다.

12일(현지시간) 이집트 일간 알 아흐람에 따르면 수백 명의 트럭과 소형버스 운전자들은 지난 10일 디젤 부족에 항의하기 위해 카이로 주요 도로와 다리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도로를 점거한 운전자들과 통근자들 간의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승용차들의 창문이 깨지기도 했다.

카이로 서부 기자 지역에서는 시위 참가자와 불참자의 난투극이 발생했다.

일부 학생과 공무원들은 통학 또는 출근을 하려고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트럭 운전사인 알람 마흐무드는 새벽 5시에 자신의 차량을 몰고 주유소로 서둘러 갔지만 길게 늘어선 차량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마흐무드는 "오늘 중으로 연료 탱크에 디젤을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러한 디젤 부족 사태는 난생 처음이다"라고 AFP 통신에 말했다.

또 농부와 버스 운전사, 제빵업자 등 디젤을 이용하는 산업 수요자들의 불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집트에서 디젤 연료가 부족해 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주유소 업주가 정부의 보조금으로 가격이 저렴한 디젤을 할당받고 나서 이를 주유소에서 팔지 않고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주는 주유소에서 디젤 20ℓ를 20이집트파운드(약 3천200원)에 거래하지만, 암시장에서는 이를 최소 2배 이상의 가격에 팔 수 있다.

이집트 석유장관 오사마 카말은 "주유소에서 연료 부족 사태는 감시 요원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업주)가 현 상황을 이용해 연료를 빼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디젤의 상당량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밀수되면서 상대적으로 이집트에서 부족분이 발생하고 있다.

이집트군은 지난 1~2월 가자지구와 접경지대의 밀수꾼으로부터 압수한 연료 탱크 15개와 밀수 통로로 이용되는 터널 여러 개를 파괴했다.

이집트의 한 군 관리는 2011년 시민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하고 나서 치안의 부재 속에 가자지구로 연료 밀수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집트에서는 시민혁명 발발 2주년인 지난 1월25일부터 연료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집트 정부는 연료 부족 문제로 재정에도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정부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하루 디젤 공급량을 10% 늘릴 계획이지만 이에 따른 정부의 보조금 지출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이집트는 매년 전체 예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억 달러를 에너지 보조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게다가 이집트는 현재 외화 보유액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예산 적자 폭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IMF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집트와 IMF는 지난해 11월 구제금융 지원 협상에 잠정 합의했으나 이후 새 헌법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시위가 가열되고 정국혼란이 지속하면서 양측의 추가 협상이 보류됐다.

이집트 외화보유액은 시민혁명 전 360억 달러에서 3분의 2가량 줄어 현재 135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약 2.7개월치 수입을 충당할 수 있는 액수로 시민혁명 이후 최저 수치다.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