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공황에 이은 대표적 부채 디플레이션 사례로는 1990년대 후반 일본 경제가 꼽힌다.

이 시기 일본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가계와 기업의 채무부담 증가가 다시 물가와 자산가치 하락(디플레이션)을 몰고 오는 악순환에 시달렸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01년 3월 디플레이션을 공식화하면서 다양한 정책을 구사했지만 디플레이션 상태는 2006년 8월까지 5년간 더 이어졌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자산가치 하락에서 비롯됐다. 닛케이평균주가는 1989년 12월 말 사상 최고치인 3만8915엔을 기록한 뒤 하락세를 거듭, 1990년 10월 2만엔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다. 닛케이평균주가는 1997년 말에 1만7000엔 선까지 떨어진 뒤 등락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9000엔 선을 밑돌고 있다.

부동산 버블 붕괴도 동시에 나타났다. 토지자산평가액은 1990년 이후 3년간 534조엔이나 급감했다. 이 중 가계 부문의 비중은 약 140조엔을 차지했다.

특히 일본 6대도시의 주택지 지가지수는 1991년 223.4(2000년 100기준)로 정점을 찍은 뒤 2005년 77.6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들 지역 지가는 최고치 대비 70%가량 떨어졌다. 상업용지는 85% 급락했다.

보유 주식과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현금흐름이 나빠지자 일본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줄이는 데 나섰다. 일본 국내 은행의 설비투자 대출금은 1997년 187조8000억엔에서 2004년 174조1000억엔으로 13조7000억엔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투자가 큰 폭으로 후퇴한 셈이다.

물가하락으로 실질금리가 상승하면서 기업과 가계의 채무부담이 높아졌고 결국 빚을 갚으려고 담보로 맡긴 자산을 처분해 다시 물가를 떨어뜨리는 양상이 반복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계와 기업의 파산이 늘었고 투자와 소비는 더욱 위축됐다.

개인은 실질 소득이 줄어들면서 주택담보대출의 상환능력이 더욱 떨어졌고 매출 감소로 기업들의 부실채권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1990년대 이후 지속된 일본의 이른바 ‘20년 불황’은 부채 디플레이션 현상이 중첩적으로 되풀이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