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매물이 인수·합병(M&A) 시장에 쏟아지면서 자금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과도한 차입으로 대어(大魚)를 삼켜 배탈이 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덩치가 큰 기업을 인수하면 단숨에 그룹의 외형을 확장할 수 있지만 풋백옵션(주식 등 자산을 되팔 수 있는 권리) 부여 등 무리한 수단을 동원해 자금을 확보하면 나중에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이 무리한 기업 M&A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유도 이와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인수기업이 부실화하면 채권은행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금융시장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무리한 M&A 자금조달 곤란"
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현재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연내 매각 작업이 개시될 하이닉스와 대우건설, 금호생명, 동부메탈, 대우인터내셔널, 현대종합상사 등의 기업 매각규모는 대략 13조 원대를 웃돈다.

내년부터는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우리금융지주, 외환은행 등도 매각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아직은 M&A 시장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기업 구조조정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기 회복이 본격화하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승자의 저주'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과 채권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

작년 9월에 불거진 금융위기를 계기로 비싼 가격으로 매물을 인수했다가 차입금 부담으로 인수기업이 위험에 빠지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 사례가 잇따라 나타났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2006년 대우건설 지분 72%를 인수하면서 재무적투자자에게 풋백옵션을 부여했다가 작년 하반기 유동성 위기를 겪은 것이 대표적이다.

풋백옵션은 주식 등 자산을 사들이는 투자자에게 일정한 조건에서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계약을 말한다.

당시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2009년 12월에 대우건설 주가가 3만4천 원을 밑돌 경우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되사주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에게 연 9%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해줬다.

그러나 건설경기 침체와 금융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하면서 막대한 규모의 손실보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우건설을 되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금호아시아나 말고도 동부, 애경, 유진, 대한전선 등 경기호황기에 과도한 M&A로 재무상태가 나빠져 채권은행과 재무개선약정(MOU)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그룹들이 상당수 있다.

금융당국은 무리한 M&A로 인수기업이 부실화하면 해당 기업 주채권은행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금융시장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M&A와 관련한 감독과 채권은행의 역할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당국은 채권은행을 통해 기업 M&A 진행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채권은행이 지분 보유 기업을 팔 때 인수 희망자의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풋백옵션 부여 등 자금조달 구조와 인수 능력을 면밀히 평가하도록 주문했다.

특히 하이닉스와 대우인터내셔널 등 정부와 국책금융기관이 보유한 기업의 지분을 매각할 때 인수 기업에 대한 이 같은 평가지표를 강화하기로 했다.

◇채권단 "인수자 자금조달방식.차입비율 평가"
기업을 매각하는 채권은행도 금융당국의 방침에 따라 인수자를 선정할 때 자금조달 능력과 전략적투자자의 참여 여부 등을 따져보기로 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이번에 선정된 4곳의 대우건설 우선인수협상 후보자들은 재무적투자자나 펀드가 참여한 컨소시엄 형태로 구성됐으나 모두 경영을 맡을 전략적투자자(SI)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민 행장은 "우선협상대상자나 차상위 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때는 대우건설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매각 가격과 함께 인수자측의 자금 조달 능력과 전략적투자자가 어떤지를 주로 따져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대우인터내셔널 매각에 나선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인수후보자의 차입비율에 점수를 매길 예정이다.

캠코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 주요 인수자가 전략적투자자인지, 재무적투자자인지, 전략적투자자의 재무력, 자금조달 방법이 어떤지 등이 평가 기준에 포함돼 있다"며 "타인 자본 의존도 등은 절대 기준을 두기는 어렵고 입찰 참여자들 간 상대 비교를 통해 점수를 매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채권단의 고위 관계자는 "주주와 채권단이 모여 인수 의사를 밝힌 효성이 자금조달을 어떻게 할지,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을 어떤 식으로 가져갈지 등을 평가할 것"이라며 "인수자의 자금조달 능력이 턱 없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매각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은행들은 금융당국이 과도한 인수금융을 통제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실제 창구지도나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 어느 정도 규제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인수금융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M&A 시장이 위축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M&A라는 것이 매수 세력이 강하냐, 매도 세력이 강하냐에 따라 가격과 조건이 정해진다"며 "기업이 과도한 차입금으로 M&A에 나선다고 해도 이는 사기업의 경영활동이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고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감독당국 관계자도 "인수 기업의 차입금 비율이나 채권은행의 재무적 투자 참여 비율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로 M&A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M&A 시장을 직접 규제할 의사는 없음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기업을 매각하는 채권은행이 인수기업의 재무상태와 자금조달 방식을 꼼꼼히 살피고 인수기업의 주채권은행 등도 해당 기업의 유동성 상황을 감안해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윤선희 김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