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LG화학 등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10년가량 먼저 사업을 시작한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미국과 유럽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 납품 계약을 잇달아 따내고 있는 것.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LG화학과 삼성SDI는 글로벌 2차전지 시장점유율에서도 일본 기업을 추월,추격자에서 시장 선두주자로 화려한 변신을 이뤄냈다. 전문가들은 후발주자인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이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선택과 집중'을 꼽고 있다. 한발 앞선 시장예측으로 주력 기술분야를 정하고 투자를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잇따른 승전보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은 올 들어 일본 기업들을 따돌리고 GM BMW 등과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휴대폰 노트북 등 소형 디지털기기의 2차전지 수요가 포화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전 세계 2차전지 기업들에 새로운 금맥과 같다. 2차전지 기업들이 최근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과 시장 선점에 주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JP모건에 따르면 전기자동차 시장은 올해 74만대 규모에서 2020년 1293만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와 맞물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도 같은 기간 1억8000만달러에서 159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올해 초 GM이 내년부터 양산할 전기차 '시보레 볼트'의 리튬이온전지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달에는 GM이 2011년에 내놓을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형 전기차(모델명 뷰익)의 배터리 단독 공급권도 따냈다.

삼성SDI도 지난달 독일 BMW의 전기차용 배터리 독점 공급업체로 선정돼 시장 쟁탈전에 본격 가세했다. 삼성SDI와 보쉬의 합작사인 SB리모티브를 통해서다. SB리모티브가 배터리를 공급할 차종은 BMW가 개발하는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전 차종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전기차용 2차전지 시장 선점은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산업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며 "특히 도전장을 내민 지 10년여 만에 일본 기업을 뛰어넘게 된 것은 국가적인 쾌거"라고 전했다.

◆10년 만에 세계시장 쥐락펴락

4~5년 전만 해도 글로벌 2차전지 시장은 일본의 독무대였다. 산요와 소니 등 일본 양대 2차전지 업체가 1991년 시장에 진출하며 전 세계를 휩쓸었다. LG화학과 삼성SDI가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건 각각 1999년과 2000년이다. 사업 진출 초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던 한 · 일 간 2차전지 경쟁은 2004~2005년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들의 기술 수준은 전방산업인 디지털 모바일기기 산업의 급성장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일본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LG화학은 사업 진출 4년 만인 2002년 세계 최초로 2200mAh(미리암페어)급 노트북용 리튬이온 2차전지를 내놓았다. 삼성SDI도 2005년 세계 최대 용량의 원통형 리튬이온 2차전지(2600mAh)를 개발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일본 기업들이 과점하던 시장구도도 깨지게 됐다. 일본 시장조사기관 IIT에 따르면 삼성SDI와 LG화학은 지난 2분기 소형 리튬이온전지 부문에서 각각 18.6%,13.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나란히 세계 2,3위에 올랐다. LG화학은 사업진출 이후 처음으로 소니를 제치며 3위에 올라섰다.


◆적중한 시장 예측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일본 기업보다 한발 앞선 시장 예측과 투자 결정을 빼놓을 수 없다. 삼성SDI와 LG화학이 2차전지 시장에 진출했던 당시에는 일본 기업이 니켈 · 수소전지로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들은 니켈수소전지 대신 리튬이온전지 개발로 눈을 돌려 투자를 집중했다. 니켈수소전지로 일본과 경쟁하기에는 너무 늦은 데다 리튬이온전지의 향후 시장전망이 더 밝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소형 디지털기기에 들어가는 2차전지는 2000년대 들어 니켈수소전지에서 리튬이온으로 빠르게 교체됐다. 차세대 전기차를 개발하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 역시 가격이 니켈수소전지에 비해 10~15% 비싸지만 에너지 충전량이 50% 이상 높은 리튬이온전지를 선호하고 있다. IIT는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리튬이온전지 비중이 올해 11%에서 2015년 81%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구회진 한국전지연구조합 기획부장은 "전기차용 배터리로 값이 싼 니켈수소전지를 밀던 일본 기업들이 뒤늦게 전기차용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뛰어든 것만 봐도 국내 기업들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핵심소재 국산화 시급

국내 기업들이 2차전지 양산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2차전지 핵심소재의 국산화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크게 4개로 나뉘는 2차전지 핵심소재는 국산화 비율이 아직 50~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음극재 등 일부 소재는 거의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국내 2차 전지산업이 완성품에서만 경쟁력을 보유하고 핵심소재는 일본에 의존하는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현수 한국전기연구원 전지연구센터장은 "핵심소재 기술 개발은 2차전지의 충전용량 확대와 제조원가 절감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며 "국내 2차전지 산업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들이 소재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