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좀체 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부 경제학자들이 미 경기회복을 앞당기려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 주목된다.

2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맨큐의 경제학' 저자로 알려진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와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통화당국이 빚 부담이 큰 가계 소비를 유도하려면 인플레이션 관리를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확산되면 소비자들은 값이 오르기 전에 서둘러 제품을 구매하려 하고 이는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로고프 교수는 "몇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6% 정도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렇게 되면 돈의 가치가 하락해 결국 가계의 부채부담을 경감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맨큐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인플레이션을 조장함으로써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평가절하된 달러로 명목상 제로 금리인 대출을 상환하게 하면 소비자들은 저축 대신 소비를 늘릴 것이란 설명이다.

미 FRB는 금융위기가 터진 뒤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국채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증권의 매입을 통해 통화공급량 자체를 늘리는 '양적완화' 정책을 펴왔다. 시중에 풀려나간 돈은 시간을 두고 인플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을 자극하기 위해선 인플레이션이 임금인상을 유발할 정도로 급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임금이 오르면 세수도 증가해 가계뿐 아니라 정부도 빚을 줄이기 수월해진다. 1분기 미국의 평균 임금은 0.3%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페덱스 등 일부 기업은 임금을 오히려 삭감했다. 로렌스 볼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FRB가 물가관리 목표를 현행 연 1.5~2%에서 3~4% 수준으로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인플레이션으로 달러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면 해외 투자자들은 달러 자산을 처분,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