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영국이 나라 빚을 줄이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세금 인상을 통해 정부 부채를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앨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은 22일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예산안 발표에서 "올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2.4% 규모인 1750억파운드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달링 장관은 이어 "올 성장률은 -3.5%로 뒷걸음치지만 연말부터 회복세를 타 내년엔 1.25%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올 성장률 -4.1%보다 낙관적인 전망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영국 재정적자가 제2차 세계대전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보도했다.

◆고소득층 소득세율 50%로 상향

영국 정부는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연봉 15만파운드(약 3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50%(현행 40%)로 상향 조정 △고소득층 연금 세금 감면 혜택 축소 △담배 · 주류 · 유류세 인상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달링 장관은 "이 같은 조치를 통해 재정적자는 내년 1730억파운드,2011년 1400억파운드,2012년 1180억파운드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5년 "다음 총선까진 세금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달링 장관이 이 같은 특단의 조치를 내놓은 건 급증하는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 탓이다. GDP 대비 순부채 비중은 올 회계연도 59%에서 2013년에는 79% 수준인 1조3700억파운드로 늘어날 전망이다. 더 타임스는 국민 1인당 2만2500파운드의 빚을 지는 셈이며,내년 회계연도에 정부가 지급하는 이자만 429억파운드로 연간 교육예산보다 많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영국이 금융권 구제금융에 총1조4000억파운드를 쏟아붓고 작년 11월 200억파운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데다,재정지출이 GDP의 48%로 급증하면서 '빚더미'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약발 미지수…불확실성 증폭

하지만 이 같은 '세금폭탄' 정책이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영국 정부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낮췄지만 소비와 투자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업자 수는 지난 2월 210만명으로 치솟았고 제조업 경기도 40년 만의 최악이다. 세금 인상은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뜨리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인 자유민주당 닉 클레그 당수는 "달링의 정책은 고소득층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조세형평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재정적자 악화와 막대한 부채로 영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도 증폭되고 있다. 파운드화 가치는 2007년 11월8일 파운드당 2.10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뒤 23일 1.45달러로 30%가량 폭락했고,10년 만기 국공채 부도위험은 회사채보다도 높아졌다.

영국 정부는 이날 △올해 2200억파운드 규모의 국채 발행을 통한 유동성 확충 △실직자 재교육 등 30억파운드 규모의 실업구제책 △폐차 후 신차 구입시 2000파운드(약 400만원) 보조금 지급 등 추가 경기부양책도 함께 내놓았지만 재원 마련 방식 등 구체적 내용이 빠져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영국 금융권 회생엔 추가로 1500억파운드가 필요하고,네이션와이드 등 9개 주택조합에도 구제금융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