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앞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율촌산업단지에 들어선 현대하이스코 공장은 두 곳의 행정구역에 걸쳐 있다. 전체 부지(43만6103㎡) 중 54%는 광양시에,46%는 순천시에 속해 있다.

이처럼 하나의 공장이 두 곳의 행정구역으로 쪼개진 것은 매립지를 둘러싼 순천시와 광양시의 관할권 다툼 때문이다. 당초 현대하이스코 측은 매립이 완료되자 육로상 가까운 순천시에서 건축허가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광양시가 해상 경계선을 기준으로 볼 때 공장부지 일부는 자기 관할이라며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이 분쟁은 7년 만인 2006년 7월 헌법재판소가 광양시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공장부지 관할권이 순천시와 광양시로 나눠지면서 결국 현대하이스코만 지방세납부,건축인허가,사업계획승인 등 기업활동을 할 때 일일이 양쪽 지자체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됐다.

지자체들이 지방세 수입을 늘리기 위해 알짜 매립지를 서로 차지하려고 분쟁을 벌이면서 매립지에 입주하는 기업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피해는 관할권 결정 이후 뿐만 아니라 분쟁 중에도 발생하고 있다. 헌재 결정이 나오는데 평균 4~5년씩 걸리면서 분쟁기간 중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년째 부산시와 경상남도가 관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부산신항에선 상 · 하수도와 도시가스관 등을 제때 연결하지 못해 기업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실제 지난해 말 이곳에 사옥을 완공한 한진해운신항만㈜은 어느 쪽 상 · 하수도관을 이어야 할지 결정이 안돼 이동식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했다. 부산시가 지난해 8월 실태조사를 한 결과 하수관로가 연결되지 않아 4개 업체가 자체 오수시설을 사용하고 있었다. 2005년에 시작된 두 지자체 간 분쟁은 올 연말께나 결론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관할권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곳들이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중국을 견제할 경제자유구역으로 개발 중인 인천 송도신도시의 경우 인천시 기초자치단체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1월 매립이 완료된 송도신도시 5 · 7 · 9 공구를 연수구에 편입했다. 1~4공구가 이미 연수구로 토지등록된 데다 향후 송도국제도시의 분구 등을 고려할 때 행정구역을 단일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남동구와 남구는 지난 17~18일 인천시장과 연수구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 소송을 각각 냈다.

남동구는 '육상경계선을 연장한 해상 경계선이 행정구역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5 · 7공구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남구도 '해상 경계선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송도 9공구는 남구 관할'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앞서 지난 13일 소송에 들어간 중구는 '9공구는 항만배후지원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매립됐기 때문에 인천항 관할인 중구에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세계경제자유기지로 건설 중인 새만금간척지에서도 매립이 끝나는 시점에 이 같은 지자체 간 관할권 다툼이 일어날 것으로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이 매립지가 군산 김제 부안 등 3개 지자체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안부는 분쟁기간을 1년 안으로 줄이기 위해 다음 달부터 헌재 대신 행안부가 관할 지자체를 결정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지만 매립지의 행정구역을 반드시 단일화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밝혀 입주 기업의 불편은 계속될 전망이다.

행안부 김상진 사무관은 "가급적 기업이나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쪽으로 관할을 나누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해상경계선,행정관습선 등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