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자금과 관련한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줄소환이 17일부터 시작된다. 일각에서는 총수들의 소환조사까지 거론되면서 관련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가 치열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법대로'를 요구하는 명분론과 '경제도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대치하는 형국인 셈이다. 검찰이 "죄질을 따져…"라고 말하고 있는데 반해 대통령이 "기업인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내놓은 것도 기업인 처벌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견해차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잘못한 것이 있어 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움직일 수 없는 법치주의 원칙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정치자금에 관한 한 기업인들을 피해자로 볼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조차 스스로 '피고석에 있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어느 누구도 불법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면 더욱 그렇다. 기업인을 무차별적으로 처벌한다면 국제 신인도 추락과 이로 인한 차입금리 상승 등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경영 공백이 초래되고 사회의 반기업 정서를 심화시켜 기업 사기의 저하는 물론 노사관계 악화까지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인에 대한 사법처리는 이제 겨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는 우리 기업에 대한 불투명성을 높여 결국 그 피해를 국가와 국민 모두가 부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30년 전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막강한 규제권한이 혁파되지 않으면 선거가 끝날 때마다 기업인이 검찰에 불려다니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인 몇 명 처벌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CHL의 김성기 대표 변호사는 "우리 경제의 급박한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인 구속이 경기침체와 국제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이치"라며 "법치주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업인 처벌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규황 전경련 전무는 "이 기회에 기업을 정치자금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제도적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며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기업인들을 처벌할 경우 그들은 오히려 잘못된 역사의 십자가를 진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일훈ㆍ장경영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