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시중 자금난의 실체는 중견기업들의 신용위기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19일 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으나 중견기업들을 둘러싼 신용위기의 공포증이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정부대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수요기반을 늘리는 방안이다.

신용보증기관을 통해 회사채에 일정 부분 보증하는 부분보증제도를 실시하고 10조원 규모의 채권투자펀드를 조성키로 한 내용이 그 핵심이다.

투신사는 구조조정의 터널에서 헤매고 있고 종금사는 중견기업 못지않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고유기능인 회사채와 CP 매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나 다름없다.

투신사에선 올들어서만 37조2천억원이 빠져 나갔다.

종금업계의 수신고는 3조3천억원, 은행신탁은 21조4천억원이 각각 줄었다.

이런 상태에서 대책이 나왔다.

일단 수요확대는 기대할 수 있다.

은행 보험에만 허용된 퇴직신탁을 투신사에 허용한 것도 회사채 등의 매입여력을 확충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심리적인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이정조 향영21C리스크컨설팅 사장은 "지금같은 불안시기에는 심리변수를 안정시킬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이와 관련, "회사채와 CP를 1년 정도 자동연장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채와 CP 발행 기업중 도산위험이 있는 회사는 별로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자금이 들어가지 않는 이같은 연장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악성루머에 시달리고 있는 중견기업들이 지원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구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임주재 수석전문역은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노력중이지만 재무구조가 아직 취약한데다 시장은 작은 소문에도 흔들릴 만큼 예민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기업들이 98년에 비해 나아진게 없는 신용등급으로 회사채 만기연장을 요청하면 담보도 못잡는 2금융권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기업들 스스로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지 않을 경우 정부가 내놓은 회사채와 CP 수요 확대 방안은 제한적인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선 해당 기업들을 대상으로 과감한 생살(生殺)을 가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시적인 지원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주채권은행이 지원해 살리는 반면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은 빠른 시일안에 정리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들도 비슷한 잣대로 생살여부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야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될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이달중 계열기업의 신용위험을 특별점검하는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필요할 경우 주채권은행의 자금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의치 않다고 판단된 기업은 퇴출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