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조용하다 싶던 현대자동차가 마침내 입을 뗐다.

"GM의 대우차 인수는 절대 안된다"

"대우의 폴란드 공장 만큼은 꼭 인수하고 싶다"

이계안 사장의 이 두 마디에 일사천리로 달려온 GM의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연히 큰 충격을 받은 눈치다.

정부와 채권단도 이 사장의 뜻하지 않은 발언에 다소 당황하는 분위기다.

현대가 던진 승부수는 국내업체에도 해외업체와 동등한 기회를 달라는 것.

정부나 채권단으로선 좀처럼 물리치기 어려운 명분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사정이 호전되고 있다는 점과 "역차별"에 대한
국민정서가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현대의 공식 입장 표명으로 공개 경쟁입찰은 물론 분리 매각방안도 검토
대상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

과연 자동차 메이커를 해외 메이커에 팔아야 하느냐는 산업정책적인 분석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 GM 인수 왜 반대하나 =이 사장은 GM의 인수를 반대하는 이유로 고용
불안과 부품산업의 붕괴 등 몇가지를 걸었다.

우선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의 붕괴다.

현대는 GM이 지금까지 다른 나라 기업을 인수할 때 기술이전은 하지 않은채
로열티 챙기기에 급급해 부품업체를 키우는데 인색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사장도 이날 "GM이 과거 대우차와 제휴하던 시절에 기술 이전은 제대로
하지 않은채 높은 로열티만 챙겼던게 대우차 부실의 한 원인이었다"고 강조
했다.

이 사장은 특히 최근 업계 대표들과 정덕구 산자부 장관이 국내 부품업체
대형화를 위해 부품업체에 대한 지원 플랜을 작성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정부가 GM의 대우차 인수를 허용하면 국내 부품업체들을 대형화해 육성
하겠다는 의지와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고용불안도 반대 이유다.

이 사장은 "GM이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문서화되지 않은 말
뿐의 약속"이라며 "GM이 대우를 인수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심각한 고용불안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경우 현대의 입지가 불안해진다는 점도 반대
이유 가운데 하나다.

<> 폴란드공장 택한 이유 =현대가 폴란드 공장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은
폴란드공장이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GM도 대우의 해외공장 가운데 폴란드에 가장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폴란드공장은 현재 공장 가동률이 1백%에 가깝다.

게다가 준EU 국가 대우를 받고 있어 유럽에 대한 수출도 자유롭다.

무관세여서 경쟁력이 뛰어나다.

경영실적이 좋아 내년에는 런던증시에 상장한다는 계획도 잡혀 있다.

독자생존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GM도 이 공장 인수를 노렸으나 대우에 선수를 빼앗겼고 현대도 폴란드
진출에 적극 노력했으나 번번히 실기해 현지에서 대우의 위상은 막강하다.

이 사장은 "EU의 견제에서 벗어나려면 현지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며
"그러나 세계 자동차업계의 생산시설이 과잉상태라는 점이 부담인 만큼
현대의 폴란드 공장 인수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대우 폴란드공장을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생각이다.

현대자동차는 내년 상반기 그룹에서 분리된다.

폴란드 공장 인수는 전문화를 위한 집중이라는게 현대의 설명이다.

< 김정호.김용준 기자 j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