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하는 이귀춘(38) 과장은 요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선지 6개월째인 그의 연봉은 1천%인 보너스가
전액 삭감되며 매달 받는 월급(2백24만원)에 불과한 2천6백80만원으로
줄었다.

지난해(3천9백80만원)보다 32.6% 줄어든 것.

그는 매달 붓고 있던 적금을 해약했다.

3년전 아파트를 살때 빌린 은행대출금의 절반이라도 서둘러 갚기로 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드리던 용돈도 당분간 없애기로 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갖던 외식도 한달에 한번꼴로 줄였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정리해고에 신경이 쓰여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도 회사에 출근,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보증을 서준 처남이 지난해 11월 부도를 맞아 이번달부터는 대출금을 대신
갚아야 한다.

IMF체제에 들어선뒤 삶의 질은 크게 후퇴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대한상의가 서울의 가정주부 8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수입이 줄었다는 가구가 전체의 76.5%에 달했다.

수입이 줄어든 가구의 평균 감소율은 32.0%를 기록했다.

소득수준이 6~7년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반면 기름값 인상등 소비자물가는 오름세를 보여 생활수준은 더욱 나빠졌다.

소비패턴에도 변화가 뚜렷하다.

상의 조사에서 주부들은 우선 외식비(21.8%) 의복구입비(19.8%) 문화레저비
(11.0%) 등을 줄였다고 답변했다.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내구소비재인 자동차의 경우 올들어 월간 승용차 판매대수가
평균 5만대에 불과, 89년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부동산 주식등 자산가치가 하락세를 나타내면서 곳곳에서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집을 줄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매매가 형성되지 않아 전세금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당첨받은 아파트를 포기하려는 청약인과 건설회사간 청약대금 반환분쟁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IMF체제이후 하루에 1만명꼴로 실직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연말까지 실업자수는 2백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가장의 실직에 따른 "가족해체"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혼과 "홈리스"라
불리는 실직부랑자층의 증가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IMF체제이후 전반적인 국민들의 생활지표를
종합해 보면 생활수준이 10년정도 후퇴했으며 당분간 이 상태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 정태웅 기자 reda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1일자 ).